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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라는 이름의 환상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그래.

수없이 많은 것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데,
그 이룬 하나는 하나가 아니야.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조금 조금 모여 만들어진 것들이,
한방이면 아웃이야. 이런 어처구니 없는 손익배상이 어딨나 싶게도.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지. 그래서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을 멋대로 기대하고 꿈꾸고 희망하지만.
때론 느껴지는 것 역시 전부는 아니었단 사실을 깨닫지. 매번, 또 매번.

그렇게 수없이 깨닫고 깨닫는데,
그래도 그걸 또 반복해버려. 멍청하게.

세상엔 믿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들이 참 많고 그런 것에 회의를 품는 순간 인생이 피곤해지지만,
세상에 정말 믿어버리면 그만인 것이 단 한 개라도 있나? 정말로?

우린 서로 너무 신중하지만, 우린 서로 너무 몰라. 그래서 만들어 낸 ‘친절’이란 거,
때론 그것조차 대단히 불쾌해.

공과 사를 구별하고, 지인과 타인을 구분하고, 선 안 쪽과 바깥 쪽을 격리시키는 거,
이건 반오십년을 가까이 해왔는데도 참 어렵다. 앞으로 반오십년을 더해도 그렇겠지?

구별된 공과 사, 구분된 지인과 타인, 격리된 선 안 쪽과 바깥 쪽,
내가 안 쪽에 있을 땐 참 좋은데, 바깥에 있을 땐 기분 참 더럽지. 그렇다고 모두의 안쪽에 서겠다고 하면? 글쎄;

적당히 알고, 적당히 믿고, 적당히 ‘척’ 하고, 적당히 웃어주고,
그리고 돌아와 그런 나를 혐오하고.

하해와 같이 넓은 마음으로, 태산과 같이 높은 아우름으로,
그런 사람을 영웅시하는 이유는? 왜냐하면 걔네가 제일 만만하니까.

말 조심하자. 말이 말이라는 알을 낳으면, 그 알 속에서 무엇이 나와도 제 어미와 똑같을 수 없단다.
물론, 말 조심조차 필요 없을만큼 진실되게 살 자신이 없다면 그래.

믿다가 속고,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화나고, 그래서 버럭 화내는 일이 부단히 있지만,
다른 어떤 이유보다 그 따위 이유 때문에 포기한다는 건, ‘사람’으로서 살 자격이 없는 거지.

믿음이라는 이름은 정말 수없이 많은 경우에서 공상에 가까운 환상이지만,
아직 판단은 일러. 이제 23년 살았다, 나.

오랜만에 참 사색휴지통에 어울리는 글이네
휴지는 분리수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