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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뜬 밤

나는 한 때 나 스스로를 문학소년이라고 불렀다.
그 한 때란. 중학교 3학년, 내 인생의 공황기라 불리는(다른 이들은 이를 사춘기라고도 하더라) 때를 기점으로, 대학교 입학 후 락스피릿 충만하게 불태우는 종점까지를 의미한다. 그 시절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뜨거웠던 사랑의 시작과 중간과 끝, 그리고 그 후가 중첩되는 시간이었으며. 나를 지금의 나로 있게한,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해 줄 내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던 시간이기도 했으며, 내가 나란 존재를 오롯이 눈 뜨게 한 시간이기도 했다.

굳이 이름붙이자면, 인간 김민상의 ‘인격 형성기’ 쯤?
이를테면 그렇다. 지금의 나는. 날마다 귀차니즘으로 소일하고, 기타코드와 프로그래밍코드 양자에서 모두 오르가즘을 느끼며, 일방향 올인러쉬급 사랑을 꿈꾸고, 내 미래와 남은 인생에 대해 비교적 현실적인 공상을 꾀하는. 대략 평범하면서도 참 평범하지 않은. 나. 인간, 김민상.

그 시절이 지나고도 주욱, 나는 주욱주욱 비내리는 날마다 글을 두드렸다. 비에 관한 슬픈 추억이나 지나간 옛사랑의 흔적, 현실에 직면한 두려움 따위는 모두 내게 좋은 소재였고, 또한 쓸만하기 그지없는 주제였던거다. 그 소재의 제한성이나 주제의 폭좁음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던것 같다. 나는 살만하다. 나는 세상을 사랑한다. 그래서 내 글의 끝은 언제나 윤동주 시의 마지막 연처럼 반전이 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나는 그럭저럭 잘 살아온 것이다. 그럭저럭 이 정도면 후회할 일들 착실히 줄이며, 나름 나쁘지 않게.

그러나,
요즘 들어 가끔 이상한 생각이 든다.
나,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걸까?

이 질문을 대답해 줄 사람은 나 밖에 없다.
그 사실은 참 오래전에 알아버렸기에, 나는 그 질문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해 본 적도 없는걸.

날마다 외롭다 떠들며, 나는 나를 구속한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이런 시 구절이 떠오르고는, 다시 나는 나를 외면한다.
내게도 백마탄공주님 같은 예쁜 두번째 사랑이 ‘던져질’거라 믿으며, 또다시 나는 나를 외면한다.


[#M_노희경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less..|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노희경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_M#]

눈을 뜰 시간은,
너무 늦다, 지금도.

눈을 떠라.
눈을 떠라, 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