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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 한강대교

2018년 여름, 한강대교.


한 남자가 한 소녀를 안고 서 있다.


소녀의 눈은 울다 지쳐 새빨갛게 부어있다.


남자의 한 손엔 우산,


우산의 첨단부에는 불쑥 튀어나온 꼭지 대신 커다란 유리잔이 놓여있고,


그 안에는 짙은 갈색 빛의 황산이 찰랑댄다.


남자와 소녀의 앞으로 한 무리의 경찰차들이 포위진을 형성하고 있다.


군데 군데 소총을 겨누고 있는 이들도 보인다.


그들이 입고 있는 검은색 방탄복, 뒤에는 S.W.A.T 네 글자가 선명하다.


조금 뒤, 통제된 지역 바깥에서는 각 방송사의 중계차들이 즐비해있다.


기자들은 한 컷이라도 더 담으려 바쁘게 뛰어다니고,


카메라맨들은 카메라 텔레스코프의 성능을 안타까워하기에 바쁘다.



소녀는 대통령의 하나 뿐인 손녀딸.


평소처럼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언제나처럼 기다리고 있던 청와대 경호실 소속의 검은색 세단,


그러나 그 안에서 소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늘 보던 경호실 ‘아저씨’가 아니었다.


“아저씬 누구세요?”


“너희 할아버지를 증오한다는 것만 빼면 지극히 선량한 대한민국 국민.”


그 말이 소녀가 남자로부터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이는 한강대교 한가운데였다.

“원하는 것이 뭔가?”



비공식적이지만 국내 유일의 ‘네고시에이터’, 서울시 경찰청 강력반  김 경장이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는 누가 듣기에도 선명한 짜증과 자리보전에 대한 위기의식이 가득했다.



“원하는 것?”



남자는 나직이 말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그곳에는 숨막힐 듯한 정적이 가득했다.


김 경장은 말을 아끼고 남자의 말을 들었다.


이럴 때일 수록 많은 말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을 최대한 끌어 저놈의 목적을 알아내고, 협상을 하든 사살을 하든 준비할 수 있을테니.



“굳이 내가 원하는 것을 듣고 싶다면 말해주지. 내 딸을 살려놔라. 다시… 내게 미소짓게… 웃을 수 있게..!”



김 경장은 사상 초유의 이 어처구니 없는 인질극에서, 그 어떤 말도 들을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죽은 자를 살려내라는 인질극이라니.


김 경장은 다시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지금 당신은 죽은 당신의 딸을 살려내라고 이런 일을 벌였단 건가?”



남자는 분노에 가득찬 얼굴로 외쳤다.



“그렇다. 고작 감기에 걸려 죽은 내 딸 민지! 15만원이 없어서 감기를 달고 살았고, 수술비 3천만원이 없어 폐렴 수슬을 못해 죽은 내 딸 민지! 뭘 원하냐고? 당신들은 내게 뭘 원하나? 응? 죽어가는 딸을 돈이 없어 퇴원 시킨 아비가 뭘 하길 원하나!”



그의 절규에 찬 목소리는 대한민국 전역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카메라를 지나 위성 중계차를 거쳐 방송사를 들른 그의 목소리는 미처 거를 새도 없이 빠져나가 전국에 생방송 되었다.


이를 지켜본 6천만 국민들의 심장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그랬다. 무관심 속에 통과된 의료 민영화 법안. 그리고 7년.


모든게 바뀌었다. 만원 짜리 한 장이면 진료에 주사에 약까지 받고 치료되던 감기 치료에 15만원 이상의 돈이 들었다.


까딱 수술 한번이면 집안의 뿌리가 흔들렸다.


그러나 비대해진 공권력, 차례차례 접수당해 이제 정권 홍보물이나 다름 없는 언론.


통제당한 인터넷 자유.


이미 도망치려고 마음 먹은 순간에는 그 어디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출구를 찾지 못한 쥐는, 벽을 들이 받는 수 밖에 없다.



그 순간, 그의 모습을 생중계하던 방송사의 화면이 모두 바뀌었다.


속보 때문에 중단 되었던 주말 예능 프로그램들이 다시 재생되기 시작한 것이다.


TV 에 나오는 코미디언들은 웃고 떠들기 바빴지만 국민들 어느 누구도 웃지 않았다.

“진정 방법이 없겠나?”



집에서 여유롭게 가족들과 식사 중이었던 경찰청장은 인질극 보고를 듣고 급하게 달려와 외쳤다.



“아직 없습니다. 우산 위에 달린 잔에 가득차 있는 것은 황산으로 추측됩니다. 황급히 접근하려 했다가 그가 우산을 기울이는 순간 모든게 끝입니다. 방송이 통제되고 있다면 이 거리에서 사살 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는 있겠지만, 만약 사살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우산의 기울임을 막지 못한다면 민지 양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민지?”



“각하의 손녀따님 말입니다.”



“저 아이 이름이 민지인가?”



“네, 그렇습니다. 범인은 생각보다 영리합니다. 사람들이 TV를 많이 시청하는 시간대를 노렸고, 한강 다리 중앙에서라면 그 어느 위치에서도 범인 모르게 저격할만한 사각이 나오지 않습니다.”



“황산이 담겨 있는 잔을 저격하는 것은 어떤가?”



“그것도 무리입니다. 저 남자는 우산을 들고 있고 민지 양은 결박되어 있습니다. 잔에서 흘러 나온 황산은 우산의 모양을 따라 반구형으로 흘러내리며 우산을 태우고 그 자리에 골고루 퍼질 겁니다. 이 경우, 우산 아래에 있는 사람은 거의 죽는다고 봐야 합니다.”

김 경장은 거의 미치기 직전이었다.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었다. 그를 제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음은 물론,


그가 다른 국민들로부터 심정적 동의를 받을 것이란 사실까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섣불리 그를 자극하는 어떤 말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김 경장의 지시로, 바리케이트 너머의 방송사가 철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지금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계속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인질이 된 소녀와 이야기 중인 모양이었다.



“아저씨….”



“네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 안다.”



“이렇게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요? 민지가 할아버지한테 잘 말 해볼게요. 네?”



“이게 아무 소용 없는 짓인 것, 역시 안다. 하지만 네가 아무리 말해봐야 그 인간들이 변하지 않을 거란 것도 안다.”



“아저씨 죽은 딸도 아저씨가 죽기를 원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죽은 내 딸이 나의 이런 행동을 찬성하지 않을 거란 것도 안다. 하지만 이런 나를 용서해 줄 거다. 내 딸…. 민지는….”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한 손에 안고 있던, 그의 딸이 아닌 민지를 내려주었다.


남은 한 손에 들고 있던 황산이 찰랑 거리는 우산은 신경쓰지 않는 투였다.


다행히 황산은 한방울도 넘치지 않았다.


소녀는 이 거칠게 생긴 아저씨가 생긴 것만큼 나쁜 아저씨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만 예쁘게 잘하면 아저씨도 소녀 자신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저씨…”



“가라. “



남자는 소녀의 말을 끊고 소녀로부터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아저씨, 내가 할아버지한테….”

따다당!


그 순간 고막이 터져 나갈 것 같은 총성이 한꺼번에 울렸다.


첫번째 총알은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연이어 두번째 총알이 짙은 갈색의 액체가 찰랑 거리던 커다란 유리잔을 관통했다.


유리잔은 노란 액체와 유리 파편을 사방으로 비산하며 소녀의 얼굴에 생채기를 남겼다.


그 후로 수십발, 남자는 온몸이 걸레가 될 정도로 총탄을 맞고 서 있었다.


유리잔 속의 액체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우산 속으로 타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우산의 둥그런 표면을 따라 조용히 흐를 뿐이었다.

“아, 아….”



소녀는 귓 속을 가득 채운 이명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저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우산 아래의 남자를 하염없이 바라 보았다.


그 미소는 아빠의 미소, 엄마의 미소, 할아버지의 미소와 닮아 있었다.



.


.


.



“아빠, 민지는 그림 잘 그리니까 12색 물감으로도 충분해.”



“그러엄. 물론 알지, 알아. 그래도 아빠가 돈 더 마않이 벌어서 우리 민지 24색 물감 꼭 사줄께. 알았지?”



“응응, 아빠.”



.


.


.



FIN.

postscript : 제 10년 넘은 불알친구들은, 상상의 나래에서 허우적대는 일을 흔히 ‘소설 쓰고 자빠졌네’ 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정말 소설 쓰고 앉아있군요 ㅋㅋㅋㅋ


postsciprt2: 실화, 는 물론! 아니죠. 또한, 실화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ps3: 6월 2일 투표는 꼭 합시다;


이번 학기 ‘창의력 개발’이라는 수업을 듣고 있는데, 매주 게시판에 그 주 주제에 맞는 글을 올려야 하는 과목. 이번주 주제는 7 주; 맑은 날, 어떤 남자가 여자아이와 우산을 쓰고 한강대교중간에서 계속 서있다. 그 가능한 이유 1개는? 였음. 이것저것 별별 생각을 다 하다보니 진짜 소설 쓰고 자빠졌다 ㅋㅋㅋㅋㅋ

새벽 1시, 버스 정류장 [ AM 1:00, The Live in Bus Stop ]


2008년도 1학기 문장작법 실습


과제#3 서사문 쓰기




새벽 1시, 버스정류장


[ 1:00 AM, The Live in Bus Stop ]
















12031193


정보통신공학부


김민상


‘여기가 어디지?’


졸음에 겨운 눈을 끔뻑거려 보았다. 잠에 취해 눈이 잘 안 떠진다.


“학생, 일어나. 종점이야.”


전화로 하는 사주팔자나 금전대출 상담 광고 따위가 덕지덕지 붙은 좌석, 새카만 금속성의 바닥, 둔중한 진동음. 침침한 형광등 불빛이 들어왔다. 내 방만큼이나 익숙한 풍경이다. 시내버스 777번. 버스 기사님이 어깨를 두드렸다.


“뭔 잠을 그래 곤이 자? 여기 종점인데 학생 집이 어디야?”


우리 집은 대한민국 인천시 서구 K동. 인천이라지만 후미진 동네라 시내버스를 타고도 꽤 오랜 시간을 가야 집에 갈 수 있다. 지하철에서 내리고 허겁지겁 뛰어 막차를 탔었는데, 잠깐 새 잠들었나보다. 아무리 술에 만취해도 버스에서 잠들어 내릴 곳을 놓친 적은 없었는데 술 한 잔 마시지도 않은 오늘, 종점까지 와버렸다. 여기서 집까지는 1시간은 족히 걸어야 할 거리. 벌써부터 지치는 기분이다.



기사님의 재촉에 내 옆 자리에서 나처럼 널브러져 쓰러져 있던 기타를 어깨에 메고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어깨를 짓누르는 피곤의 무게가 기타의 무게에 더해졌다. 기타는 대학교 1학년 때 3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으로 샀다. 그 때엔 이 기타가 이토록 무겁지 않았다. 이 기타가 무슨 대단한 특권을 표시하는 징표인 마냥, 나 자신이 대단한 녀석이란 걸 나타내는 증표인 마냥. 다른 학생들이 책가방을 들고 다닐 때 나는 늘 기타를 메고 다녔다. 책가방 대신 택한 기타가 이토록 무거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군에서 제대한 후 모자란 학점을 채우느라 아등바등하며 나는 다시 기타 대신 책가방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이제 내일이면 이 녀석과도 안녕이다. 인터넷에서 이 기타를 사겠다고 한 사람과 내일로 약속을 잡았다. 마지막 날. 그 말이 주는 씁쓸함 때문에 무거운 기타를 메고 학교 동아리 연습실을 찾아갔던 것이다. 이 녀석과는 수많은 하얀 밤을 같이 했고, 공연도 참 많이 했다. 그 시절의 추억이 내게 주는 모든 것들이 이제 내일이면 이 녀석과 함께 떠나간다. 사는 것이 참 피로하다.



가로등을 따라 걸어 나갔다. 처음 와보는 곳이긴 하지만 집이 어디인지는 잘 안다. 저 멀리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반짝이고 있는 공장들이 보이니까 일단 그 방향으로만 향하면 된다. 조난당한 선원이 별빛을 이정표 삼아 육지로 돌아가듯 저 불빛을 이정표 삼아 걸으면 되겠지. 사실 이 도시의 하늘엔 별도 별로 없다.


버스 막차의 종점에서 깨어난 것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인데, 참 우습게도 그런 일을 똑같이 겪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나보다. 저 앞 쪽 가로등 불빛 아래로 나보다 먼저 나와 걷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긴 생머리가 찰랑거리는 것이 뒷모습으로 봐선 여자 같긴 한데, 설마 ‘긴 머리의 남자’는 아니겠지? 한참 기타에 미치고 락에 심취하던 대학교 초년생 시절의 내가 그랬으니 ‘설마’ 하며 웃을 일만은 아니긴 하다.



공항으로 이어지는 왕복 8차선의 도로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한산했다. 한낮에 보는 풍경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다. 도로 반대편으로는 드문드문 불 꺼진 건물들도 보이고 새카만 어둠 아래로 논밭이 보이기도 한다. 자는 동안 멈춰버린 MP3 플레이어의 재생버튼을 누르려다 멈추고 한쪽 귀에 꼽혀있던 이어폰을 뺐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들의 엔진 소리, 아스팔트를 지치는 타이어의 진동음, 그리고 벌레 소리. 무성하게 난 잡초들이 부대끼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고요는 음악 소리만큼이나 들어줄 가치가 있지. 나머지 한 쪽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을 마저 뺐다. 열 걸음쯤 앞에서 걷는 사람의 또각또각 구두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도 들린다. 또각또각 소리로 봐서는 여자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걷다가 종종 내 걸음을 의식하는 것을 보아서도.


‘이거, 참. 괜한 의심 받기는 싫은데 앞서 나갈까?’


확실히 여자 혼자 밤길을 걷기에 안전한 시간은 아니다. 너무할 정도로 한가로운 도로, 등 뒤에 따라오는 남자 – 그것도 흉기로도 짐작할지 모르는 새카만 가방을 둘러 멘. 내가 생각해도 오해하기가 딱 좋은 상황이다. 그래서 앞서가려 걸음을 빨리했더니 앞 사람의 걸음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불쑥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래서는 더 큰 오해를 살 것 같기에 아예 그 사람을 불러 세웠다.


“저기요!”


내 목소리가 치한으로 오인 될 만큼 걸쭉하지 않다는 것은 이런 경우 참 다행이다.


“네?”


그녀- 목소리로 여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는 적잖이 놀란 목소리로 답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어, 괜한 오해 받기 싫어서 그러는데요. 저 나쁜 사람 아니구요, 저도 자다가 종점에서 내렸거든요. 제가 앞에서 걸어도 될까요?”


“아, 네.”


살짝 당황한 눈치였지만 그녀는 내 말에 수긍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면 기타 가방을 흉기가 들어있을 법한 ‘그냥 까만 가방’으로 오해하는 일은 없겠지. 막 그녀 옆을 지나치려는 찰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냥 같이 걸어요. 아저씨 말대로 아저씨가 그리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진 않으니까요.”


그 말을 하면서 그 아가씨도 웃고 나도 웃었다. 어쨌거나 군대도 다녀왔는데 아저씨라 불려도 할 말 없는 나이가 된 건 맞다. 후-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아니 말을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며 아무 말 없이 걷고 있을 때, 정말 고맙게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어 주었다.


“음악 하시나 봐요?”


“아, 뭐 음악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기타를 좀…”


음악을 한다는 말은 너무 거창하다. 나를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사람들과 같은 수식어로 표현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나는 그저 지미 헨드릭스나 잭 와일드 같은 기타리스트처럼 기타를 치고 싶었을 뿐, 나는, 그저 한 때의 나는.


“그 기타 일렉이에요? 아님 베이스? 통기탄가?”


“일렉이에요.”


그래도 이쪽에 관심이 조금은 있는 아가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그 셋이 전부 완전히 다른 악기인 줄로만 아니까.


“아, 그렇구나. 멋지네요.”


그런 말은 참 많이 들었다. 그런 말을 듣기 위해 기타를 그렇게나 열심히 쳐왔는지도 모른다. 선망과 동경의 기타리스트, 그 환상에서 허우적댄 한 명의 재능 없는 기타 키드, 나. 떠나보내야 할 이 녀석의 무게가 어깨를 다시 짓누른다.



음, 그런데 내가 정말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 않아 보이는 얼굴인가? 이 시커먼 밤중에 시커먼 사내와 같이 인적 드문 길을 걸으면서도 환히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걸 보니 어쨌거나 참 성격 좋은 아가씨임에는 틀림없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키에 긴 생머리, 허리 쪽으로 비껴 멘 육중한 크기의 카메라. 겉으로 보기에도 그 발랄함이 느껴진다. 이번엔 내가 먼저 운을 뗐다.


“사진 좋아하시나봐요?”


“네? 아, 뭐, 잘 찍는 건 아닌데 찍는 걸 좋아해서요.”


그러면서 그녀는 허리께에 비껴 멘 카메라를 들어 만지작거렸다.


“카메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좋아보이네요.”


“우리 동건이 몸값 다 하려면 제가 좀 잘 찍어줘야 되는데…”


“네?”


“아, 얘 이름이 동건이거든요. 장동건. 웃기죠?”


음, 그 카메라 이름이 장동건이란다.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웃기진 않다. 내 기타의 이름은 Kid-A. 기타 키드의 첫 번째 기타라는 의미. 내 가장 소중한 ‘자식’ 같은 녀석이란 의미.


“에이, 별로 안 웃겼나보다. 제가 얘를 매일 요 허리춤에 끼고 살다시피 하거든요. 그래서 이름이라도 그렇게 붙여주자 생각했죠.”


“저도 카메라가 있긴 한데 이 녀석은 이름이 없네요. 이름을 붙여볼까요? 송혜교나 한지민 정도로?”


기타 가방의 앞주머니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꺼냈다. 제대하고 기념으로 산 스냅용 소형 카메라다.


“와, 작다. 우리 동건이가 다 좋은데 너무 크고 무거워서… 그 카메라 구경 좀 해도 될까요?”


“네”


그녀는 내게서 카메라를 건네받고는 이리 저리 만져보며 말했다.


“얘 인터넷에서 많이 봤어요. 사진은 어때요? 잘 나오나요?”


“저는 사진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모르겠지만, 그런대로 막 찍어도 잘 나오는 것 같아요. 찍은 거 한번 보세요. 뭐, 보여드려도 문제 될 만한 사진은 없으니까요.”


동건이와 지민이- 즉석에서 지은 내 디카의 이름 -는 같은 회사의 제품인 까닭에, 그녀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능숙하게 사진들을 둘러보았다. 한참 사진을 넘겨보던 그녀가 말했다.


“지금 메고 계신 기타가 이거에요?”


그녀가 보고 있던 사진을 내 쪽으로 보여줬다. 내 기타 사진이다. 인터넷 중고장터에 올리느라 찍었던.


“네. 그거 맞아요.”


“와, 멋지네요. 근데 무슨 기타 사진을 이렇게나 많이 찍으셨대요?”


“이 기타 내일 팔 거거든요. 장터에 올릴 때 첨부하려고 찍기 시작했는데, 이제 앞으로 못 보니까 많이 찍어서 남겨두려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예? 팔고 더 좋은 거 사시려구요?.”


“아뇨. 그냥 요즘 칠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해서요.”


거짓말이었다. 내가 이 녀석을 떠나보내는 것은 지난 몇 년 간, 꿈속에서 허우적거렸던 내 삶에 대한 정리의 의미. 앞으로 나는 밀린 학점들을 때우며 졸업도 해야 하고, 전쟁 같은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아 취직도 해야 한다. 그 길에 내 기타가 설 곳은 더 이상 없다.



대답을 하는 내 표정이 적잖이 우울해 보였는지, 그녀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걸었다. 저 멀리 버스 정류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반은 좀 더 온 것 같다. 그녀와 이야기하며 걷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간 모양이다. 이번엔 내가 먼저 그 침묵을 깨고 말을 걸었다.


“그쪽은 집이 어디에요?”


“K동 근처에요.”


“무슨 아파트요?”


이 동네는 거의 대부분이 새로 들어선 아파트들뿐이라 내 입장에선 자연스러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녀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나보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아파트는 아니고, T아파트 근처에 조그만 집이에요.”


그곳이라면 나도 알고 있는 곳이다. 현재 아파트들이 들어선 자리에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이 철거당하며 이주해 살고 있는 곳. 그제야 그녀의 머뭇거림을 이해했고, 내 질문이 실언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동네를 떠나서 살고 싶긴 한데 아직 여력이 안 되네요. S동에서 매일 막차시간까지 아르바이트 하거든요. 아저씨 혹시 좋은 알바 자리 있으면 소개시켜줘요. 지금 하는 건 시급이 너무 짜서 말예요. 쿡쿡.”


“아, 실례가 됐다면 미안해요.”


그녀에게 미안한 것만큼이나 내 스스로의 짧은 생각과 짧은 시야를 반성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 실언도, 또 그 실언에 대한 사과도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말했다.


“음, 뭐가 미안한지는 모르겠지만. 진짜로 미안하면 아저씨 기타 치는 것 좀 보여줄 수 있어요? 어렸을 때 우리 아빠가 치는 거 보고 그 이후엔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그쪽 아버님이 소싯적에 기타를 좀 치셨나 보네요?”


“네. 어렸을 때 본 거라 잘은 모르겠지만 그 때 기억에 되게 잘 치셨던 것 같아요. 노래도 잘 하셨고.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셔서 못 들어보니까 그 기억 그대로 간직하는 것도 좋잖아요?”


이쯤 되면 어디까지가 내 실언이고 어디까지 미안해야 하는지도 모호했다. 또한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곧이어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 앉아 기타를 꺼내들었다. 앰프를 꽂아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는 일렉 기타를 앰프도 없이, 그것도 인적 없는 8차선 왕복 도로변 버스정류장에서, 새벽 1시에. 이런 경우를 상상이라도 했을까. 그 날은 아무래도 헤식은 달빛과 가로등 불빛에 취해있었던 것 같다.



루시드폴의 ‘나의 하류를 지나’를 연주하며 노래했다. 통기타로 연주해야 하는 어쿠스틱 포크송이었지만 고요한 새벽에선 앰프 없는 일렉 기타의 감질 나는 소리도 의외로 괜찮은 맛이 있었다. 그녀는 내 연주와 부족한 노래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지금 생각이지만 그녀 역시도 헤식은 달빛과 가로등 불빛에 취해있지 않았나 싶다.


“와, 멋져요.”


“고맙습니다.”


기타를 다시 기타 케이스에 챙겨 넣으며 나는 6년 동안 나와 함께했던 녀석의 모습에서 미소를 본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 미소는 내 연주를 보며 보여준 그녀의 미소와도 닮았고, 홀로 기타를 치며 만족해하는 내 미소와도 닮아있었다.



그녀의 집은 버스정류장에서 10분쯤 되는 거리였다. 그 10여분 동안 그녀가 I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것. 카메라와 배낭만 달랑 메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여행 작가의 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기타 안 팔면 좋을 것 같네요. 내가 우리 동건이 껴안고 가는 것 처럼요.”


그녀는 떠나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학교를 다니고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막차시간까지 일하면서도, 그녀는 그 고가의 카메라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물론 ‘그녀의 꿈’이라는 거창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불현듯 사진을 좋아하냐는 내 첫 번째 질문에 답했던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잘 찍는 건 아닌데, 찍는 걸 좋아해서요.”



선망과 동경의 기타리스트, 그 환상에서 허우적댄 한 명의 재능 없는 기타 키드, 나.


나는 내게 말했다.


“잘 치는 건 아닌데, 치는 걸 좋아해.”





정말죄송하지만내


일거래못할것같습


니다정말죄송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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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 개별적인 주제를 가진 단단편 토막으로 기획했다가 어느새 단편 분량이 되는 바람에 분량 조절이 힘들었습니다. 후반부 주제 전달에 직접적인 서술보다는 다른 여러 개별 스토리를 넣고 싶었는데, 욕심에 비해 제가 잡은 시간이 여유롭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예상보다 길어진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장 6시간의 혈투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