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남는건 사진뿐이야” – 어른들이 여행만 가면 매일 하시는 이야기.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어딜 가든 사진보단 내 눈으로 보고 익히는걸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락페에서든 어디서든 종일 폰 들고 동영상 찍는 인간들을 잘 이해 못하겠다. 지금 눈앞에서 아직 인류 기술로 완벽히 구현하지 못한 4DX 현란한 초고화질의 영상이 살아움직이는데, 왜 쥐콩만한 디스플레이 안에 추억을 가두느라 바쁜거지?

또한 추억이란 단지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순간의 감정과 몸 부분부분에서 느껴지는 촉각,  무엇 하나로 특정짓긴 어려운 후각, 입안의 감각. 뭐 주워삼기려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걸 떠올릴 재료로 현장 분위기를 담을 짧은 동영상 하나. 함께한 사람들과 인증할 사진 몇장. 그냥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편. 아,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쓴 건 아니고ㅋㅋ

두가지, 내 추억에 관한 기록이 날아간 일이 있었다.

그 중 하나, 지난 몇년간 써오던 블로그의 백업본을 잃어버렸다. 보다 정확히는 어디다 놨는지 못찾겠다; 뭐 완전히 날아간건 아니고 DB는 그대로 살아있으니 너무나 다행히 텍스트는 어제 이미 다 옮겨놨긴 했네. (이거마저 날아갔으면 진짜 진심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연주한 기타 영상, 음원, 꼬박꼬박 찍었던 사진들이 죄다 없어졌다. (…이것만으로 이미 울고싶다) 회사에서 다시 한번 샅샅이 뒤져봐야 하긴 하겠지만, 내 추억이 손실된 기분이라 찹찹하네.

ㅠㅠㅠㅠ

그리고 또 하나. 이건 내가 잃었다고 표현하긴 뭐한데ㅋ 수영이와 사귀기 직전에 전화로 ‘Fix You’를 불러줬고 수영이가 이거 들으면서 통화녹음한 파일이 있었는데. 우연히 그게 지워진 상태라는걸 발견했다. 어제 영어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예전에 아이폰을 쓰다가 남겨둔 음성녹음 파일을 틀게 됐는데. 그 중 하나가 그때 연습하며 녹음해뒀던 Fix You.

http://minsangk.com/wp-content/uploads/2013/12/20120805-231535.mp3

 

이거다. 연습할 때 녹음한거라 코드도 여러번 틀리고 가사도 어버버ㅋㅋㅋ 뭐 그것도 나름 재미가 있어서 남겨뒀었다. 실제로 전화로 불러줄땐 코드/가사는 덜 틀렸는데 노래는 훨씬 못했다. 긴장하니까 노래가 잘 안되더라고ㅋㅋ 아무튼 이걸 틀어주니 수영이가 그제서야 예전에 녹음했던걸 다시 찾아보는데 없는거다. 다른 녹음파일 정리하면서 실수로 지운 모양. 완전 울상이 되어 한참을 찾더니, 결국 안타까움에 한참을 울었다.

괜찮아, 내가 나중에 또 불러줄게. 이 연습할 때 녹음한 음원도 메일로 보내줄게. 이러고 달랬는데 그때의 그 느낌이 날아간거 같아서 너무 속상하다고 그치질 못했다. 그 모습이 참 예쁘면서도 짠했네. 또한 나도 내 추억의 한조각을 영원히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평생 가도 몇번이나 들어봤을까 싶은 그런거지만, 그런 추억의 조각들은 (굳이 다시 들어보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것과 사라진 것의 무게가 참 다르다는걸 깨닫는다.

날아가면 척추가 찡하게 안타까울 것들이 또 뭐가 있을까. 리스트 정리 좀 하고 백업 좀 더 확실히 해둬야지. 그런데 이 글의 앞에서 한참을 기록보단 내 기억이 더 중요해- 라고 써놓고 이런 이야기를 하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인데 사실 앞뒤가 안맞는건 아니다.

사람의 뇌는 디지털 비트처럼 뭔가를 완벽히 지우는게 불가능하고, 다만 오래될 수록 쉽게 꺼내기 어려운 구조이지 않은가. DB로 비유하면 인덱스 파일이 수시로 랜덤으로 지워진다고 봐야지. 결국 그 기억을 꺼내려면 아주 조그만 단초가 필요하다. 내 기록들은 결국 그 총체적인 기억을 꺼내기 위한 ‘Key Hash’ 같은 것. 그게 날아가면 영원히 그걸 되새길 시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상실감을 다시 느끼는 것이 싫다.

백업 잘 해놔야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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