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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 한강대교

2018년 여름, 한강대교.


한 남자가 한 소녀를 안고 서 있다.


소녀의 눈은 울다 지쳐 새빨갛게 부어있다.


남자의 한 손엔 우산,


우산의 첨단부에는 불쑥 튀어나온 꼭지 대신 커다란 유리잔이 놓여있고,


그 안에는 짙은 갈색 빛의 황산이 찰랑댄다.


남자와 소녀의 앞으로 한 무리의 경찰차들이 포위진을 형성하고 있다.


군데 군데 소총을 겨누고 있는 이들도 보인다.


그들이 입고 있는 검은색 방탄복, 뒤에는 S.W.A.T 네 글자가 선명하다.


조금 뒤, 통제된 지역 바깥에서는 각 방송사의 중계차들이 즐비해있다.


기자들은 한 컷이라도 더 담으려 바쁘게 뛰어다니고,


카메라맨들은 카메라 텔레스코프의 성능을 안타까워하기에 바쁘다.



소녀는 대통령의 하나 뿐인 손녀딸.


평소처럼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언제나처럼 기다리고 있던 청와대 경호실 소속의 검은색 세단,


그러나 그 안에서 소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늘 보던 경호실 ‘아저씨’가 아니었다.


“아저씬 누구세요?”


“너희 할아버지를 증오한다는 것만 빼면 지극히 선량한 대한민국 국민.”


그 말이 소녀가 남자로부터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이는 한강대교 한가운데였다.

“원하는 것이 뭔가?”



비공식적이지만 국내 유일의 ‘네고시에이터’, 서울시 경찰청 강력반  김 경장이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는 누가 듣기에도 선명한 짜증과 자리보전에 대한 위기의식이 가득했다.



“원하는 것?”



남자는 나직이 말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그곳에는 숨막힐 듯한 정적이 가득했다.


김 경장은 말을 아끼고 남자의 말을 들었다.


이럴 때일 수록 많은 말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을 최대한 끌어 저놈의 목적을 알아내고, 협상을 하든 사살을 하든 준비할 수 있을테니.



“굳이 내가 원하는 것을 듣고 싶다면 말해주지. 내 딸을 살려놔라. 다시… 내게 미소짓게… 웃을 수 있게..!”



김 경장은 사상 초유의 이 어처구니 없는 인질극에서, 그 어떤 말도 들을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죽은 자를 살려내라는 인질극이라니.


김 경장은 다시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지금 당신은 죽은 당신의 딸을 살려내라고 이런 일을 벌였단 건가?”



남자는 분노에 가득찬 얼굴로 외쳤다.



“그렇다. 고작 감기에 걸려 죽은 내 딸 민지! 15만원이 없어서 감기를 달고 살았고, 수술비 3천만원이 없어 폐렴 수슬을 못해 죽은 내 딸 민지! 뭘 원하냐고? 당신들은 내게 뭘 원하나? 응? 죽어가는 딸을 돈이 없어 퇴원 시킨 아비가 뭘 하길 원하나!”



그의 절규에 찬 목소리는 대한민국 전역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카메라를 지나 위성 중계차를 거쳐 방송사를 들른 그의 목소리는 미처 거를 새도 없이 빠져나가 전국에 생방송 되었다.


이를 지켜본 6천만 국민들의 심장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그랬다. 무관심 속에 통과된 의료 민영화 법안. 그리고 7년.


모든게 바뀌었다. 만원 짜리 한 장이면 진료에 주사에 약까지 받고 치료되던 감기 치료에 15만원 이상의 돈이 들었다.


까딱 수술 한번이면 집안의 뿌리가 흔들렸다.


그러나 비대해진 공권력, 차례차례 접수당해 이제 정권 홍보물이나 다름 없는 언론.


통제당한 인터넷 자유.


이미 도망치려고 마음 먹은 순간에는 그 어디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출구를 찾지 못한 쥐는, 벽을 들이 받는 수 밖에 없다.



그 순간, 그의 모습을 생중계하던 방송사의 화면이 모두 바뀌었다.


속보 때문에 중단 되었던 주말 예능 프로그램들이 다시 재생되기 시작한 것이다.


TV 에 나오는 코미디언들은 웃고 떠들기 바빴지만 국민들 어느 누구도 웃지 않았다.

“진정 방법이 없겠나?”



집에서 여유롭게 가족들과 식사 중이었던 경찰청장은 인질극 보고를 듣고 급하게 달려와 외쳤다.



“아직 없습니다. 우산 위에 달린 잔에 가득차 있는 것은 황산으로 추측됩니다. 황급히 접근하려 했다가 그가 우산을 기울이는 순간 모든게 끝입니다. 방송이 통제되고 있다면 이 거리에서 사살 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는 있겠지만, 만약 사살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우산의 기울임을 막지 못한다면 민지 양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민지?”



“각하의 손녀따님 말입니다.”



“저 아이 이름이 민지인가?”



“네, 그렇습니다. 범인은 생각보다 영리합니다. 사람들이 TV를 많이 시청하는 시간대를 노렸고, 한강 다리 중앙에서라면 그 어느 위치에서도 범인 모르게 저격할만한 사각이 나오지 않습니다.”



“황산이 담겨 있는 잔을 저격하는 것은 어떤가?”



“그것도 무리입니다. 저 남자는 우산을 들고 있고 민지 양은 결박되어 있습니다. 잔에서 흘러 나온 황산은 우산의 모양을 따라 반구형으로 흘러내리며 우산을 태우고 그 자리에 골고루 퍼질 겁니다. 이 경우, 우산 아래에 있는 사람은 거의 죽는다고 봐야 합니다.”

김 경장은 거의 미치기 직전이었다.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었다. 그를 제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음은 물론,


그가 다른 국민들로부터 심정적 동의를 받을 것이란 사실까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섣불리 그를 자극하는 어떤 말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김 경장의 지시로, 바리케이트 너머의 방송사가 철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지금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계속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인질이 된 소녀와 이야기 중인 모양이었다.



“아저씨….”



“네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 안다.”



“이렇게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요? 민지가 할아버지한테 잘 말 해볼게요. 네?”



“이게 아무 소용 없는 짓인 것, 역시 안다. 하지만 네가 아무리 말해봐야 그 인간들이 변하지 않을 거란 것도 안다.”



“아저씨 죽은 딸도 아저씨가 죽기를 원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죽은 내 딸이 나의 이런 행동을 찬성하지 않을 거란 것도 안다. 하지만 이런 나를 용서해 줄 거다. 내 딸…. 민지는….”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한 손에 안고 있던, 그의 딸이 아닌 민지를 내려주었다.


남은 한 손에 들고 있던 황산이 찰랑 거리는 우산은 신경쓰지 않는 투였다.


다행히 황산은 한방울도 넘치지 않았다.


소녀는 이 거칠게 생긴 아저씨가 생긴 것만큼 나쁜 아저씨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만 예쁘게 잘하면 아저씨도 소녀 자신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저씨…”



“가라. “



남자는 소녀의 말을 끊고 소녀로부터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아저씨, 내가 할아버지한테….”

따다당!


그 순간 고막이 터져 나갈 것 같은 총성이 한꺼번에 울렸다.


첫번째 총알은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연이어 두번째 총알이 짙은 갈색의 액체가 찰랑 거리던 커다란 유리잔을 관통했다.


유리잔은 노란 액체와 유리 파편을 사방으로 비산하며 소녀의 얼굴에 생채기를 남겼다.


그 후로 수십발, 남자는 온몸이 걸레가 될 정도로 총탄을 맞고 서 있었다.


유리잔 속의 액체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우산 속으로 타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우산의 둥그런 표면을 따라 조용히 흐를 뿐이었다.

“아, 아….”



소녀는 귓 속을 가득 채운 이명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저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우산 아래의 남자를 하염없이 바라 보았다.


그 미소는 아빠의 미소, 엄마의 미소, 할아버지의 미소와 닮아 있었다.



.


.


.



“아빠, 민지는 그림 잘 그리니까 12색 물감으로도 충분해.”



“그러엄. 물론 알지, 알아. 그래도 아빠가 돈 더 마않이 벌어서 우리 민지 24색 물감 꼭 사줄께. 알았지?”



“응응, 아빠.”



.


.


.



FIN.

postscript : 제 10년 넘은 불알친구들은, 상상의 나래에서 허우적대는 일을 흔히 ‘소설 쓰고 자빠졌네’ 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정말 소설 쓰고 앉아있군요 ㅋㅋㅋㅋ


postsciprt2: 실화, 는 물론! 아니죠. 또한, 실화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ps3: 6월 2일 투표는 꼭 합시다;


이번 학기 ‘창의력 개발’이라는 수업을 듣고 있는데, 매주 게시판에 그 주 주제에 맞는 글을 올려야 하는 과목. 이번주 주제는 7 주; 맑은 날, 어떤 남자가 여자아이와 우산을 쓰고 한강대교중간에서 계속 서있다. 그 가능한 이유 1개는? 였음. 이것저것 별별 생각을 다 하다보니 진짜 소설 쓰고 자빠졌다 ㅋㅋㅋㅋㅋ

같은동네사는사람.png

이거 도저히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어;

네이버 첫 페이지에 ‘무한도전’, 전진 고정 멤버로 공식 인정했나 라는 기사가 떴다.
나름 무도빠로서, 기자의 낚시질임을 뻔히 알면서도 클릭을 안 할 수가 없었는데.
역시 기사 내용은 별 거 없는 낙서였지만, 댓글이 대박.


전진씨 같은 동네사는 사람입니다.
조회 247 공감 0 비공감 1 작성일시 2008.08.17. 01:21 아이디 아이디 reply_report

전진씨가 저희아파트 옆동네에 살아서 출근하면서 가끔 본적은 있습니다. 정말 믿음직하고 자기일 열심히 하고 그런 사람입니다..우연히 집앞 치킨집에서 전진씨를 만나서 같이 맥주한잔하고 이야기도 좀 해봤는데 사람 하나는 진국 이었습니다.. 참 솔직한 점도 맘에 들었고 믿음감도 가고 그래서 난 전진씨를 믿었던 만큼 내 후배도 믿었기에,난 아무런 부담없이 전진씨를 내 후배에게 소개시켜 줬고, 그런 만남이 있은 후로부터 우린 자주 함께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함께 어울렸던것 뿐인데,그런 만남이 어디서 부터 잘못됐는지,알수없는 예감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을때쯤, 넌 나보다 후배에게 관심을 더보이며 날 조금씩 멀리하던,그 어느날

아, 쓰러져;


그런데 더 웃긴건,
저 사람의 ‘다른글보기’ 를 클릭하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
님 좀 짱인듯 ㅋㅋ

아침형 인간

인간을 어떤 ‘형질’ 로 분류한다는 건 참 위험한 일이다. 혈액형, 별자리 같이 전혀 일말의 과학적 근거 없이 이루어지는 ‘대체로 일본식 분류’는 특히 더 그렇다. 그냥 그럴 것 같다- 란 생각으로 이야기를 풀다 보면 대개의 사람들은 그런 말에 그럴 듯함을 느끼고 공감을 하게 되는 법이니까. 내 혈액형은 A형인데 ‘소심한 편이지만 때로 적극적인 모습이 잠재되어 있다’ 라는 말은 사실 누구한테 써도 맞지 않나. O형을 읽어보면 ‘매사 적극적이지만 특정 부분에 관해서는 소심한 면도 보인다’ 는 말은 나한테도 맞거든? 사실 이것 역시 누구한테나 써도 맞다.

뭐 그런 일본식 분류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책(사이쇼 히로시 저)도 별반 다른 책이 아니다. 대체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 시간 관리에 철저한 사람들이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들이 평균적인 출근시간보다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갖게 된 것이 특별히 대단한 ‘아침의 매력’ 때문이라고 보지는 않으니까. 특히 잠에 대해서 (렘 수면과 논렘 수면을 설명하며) 그 주기는 약 2시간이므로 짝수시간으로 자라느니 하는 말은 좀 허무맹랑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관련 글을 읽어보면 그 주기는 약 2시간이 아닐 뿐더러 그 날 컨디션과 사람들의 특성마다 매우 현격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 주기가 20분씩 어긋난다고 치면 이미 짝수 공식은 성립할 수가 없게 된다. 뭐, 그래서 SleepTracker 같은 제품들이 나와 팔리고 있는거니까. 음, 근데 이거 너무 비싸다. 우리나라에 공식 수입원도 없고. 관세에 배송비까지 하면 대략 20만원쯤 드는 것 같네.

아무튼 그렇다고 해도 내가 이 책을 종종 아무 이유 없이 앉아 읽게 되는 건 이 책이 ‘간단한 성공 참고서’ 형식으로 쓰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식 형질 분류의 차원을 넘어서 이 책은 그냥 그 자체로 성공 사례기의 모음이다. 그리고 그 성공 사례에 대한 근거로 대는 것은 오로지 ‘아침을 얻는 것’ 뿐이니. 늘 알면서도 실천을 못하는 내게, 또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참 묘한 매력이 있다.

이 책을 처음으로 제대로 읽은건 군대에 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것이, 그 때는 이미 10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 습관처럼 굳어 있었던 때라는 것. 격일(때로 5일씩 연속으로 설 때도 있었지만) 간격으로 서는 야간근무(취사병 할 땐 기상조) 라는 게 있긴 했지만 어쨌든 대체로 일정한 시간대에 자고 일정한 시간대에 일어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데 그 때의 내가 아침형 인간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아침형 인간이 단지 기상시간만에 국한 된 정의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는 하루, 그 추가된 잉여시간이 그 당시의 내게는 추가된 노동시간일 뿐 여유시간이 될 수 없었던 것. 일어나자마자 침구류 정리하고 행정반 청소에 총기 입출관리까지, 새벽 근무 한번 섰다 하면 비몽사몽간 제 정신이 아닌 채로도 그 모든 일들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정신 차려 보면 어느새 아침을 먹고 행정반 책상에 앉아있다. 그러면 또다시 치이는 일들. 결국, 여유의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것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결국  ‘출근’ 혹은 ‘등교’의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 중 가장 효율적인 것이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부분 아닌가. 결국 여유의 문제다. 죄다 오후 수업임에도 수업 시작 1시간 전에야 급하게 씻고 옷 입고 고속도로에서 120씩 밟고 다녔던 올 복학 첫학기는, 그런 면에서 볼 때 참 한심했다. 오늘이 시험이 두갠데 주말에 내내 놀다가 월요일 되서야 발등에 불 떨어진 듯 공부한 것 역시도.

아침형 인간 실행 2일차.
쉽게 잠이 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아예 9시반쯤 씻고 10시에 잠자리에 들어버린다. 그럼 늦어도 11시 전엔 잠 든다. 기상 시간은 4시반. 평소 내가 잠 드는 시간이 2-3시였음을 생각하면 거의 ‘평소 자는 시간에 일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거다.

이틀간 아침 날씨가 궂어 산책은 못 나갔다. 책에도 있지만 괜한 목표를 두고 하는 것은 의식적인 속박이 될 것 같아 그만뒀다.  어슴프레한 새벽의 창문을 여는 것. 아침의 그 묘한 공기를 호흡하는 것. 모닝 담배의 어질한 맛. (요게 참 매력 ㅋ) 야밤형 인간들이 지난 밤 두드려 준 댓글들을 확인하는 것. 그리고 그런 뻘짓들을 모두 하고 블로그에 이런 뻘글을 두드려도 아직 6시가 안 됐음을 확인하는 것. (결정적으로 요게 가장 큰 매력)
이것들만으로도 실행한 보람이 느껴진다.

문제는,
술,
인데.

누구 나랑 같이 저녁 11시까지 술먹고 다음날 4시반에 일어나서 또 먹을 사람? ㅋㅋ

새벽 1시, 버스 정류장 [ AM 1:00, The Live in Bus Stop ]


2008년도 1학기 문장작법 실습


과제#3 서사문 쓰기




새벽 1시, 버스정류장


[ 1:00 AM, The Live in Bus Stop ]
















12031193


정보통신공학부


김민상


‘여기가 어디지?’


졸음에 겨운 눈을 끔뻑거려 보았다. 잠에 취해 눈이 잘 안 떠진다.


“학생, 일어나. 종점이야.”


전화로 하는 사주팔자나 금전대출 상담 광고 따위가 덕지덕지 붙은 좌석, 새카만 금속성의 바닥, 둔중한 진동음. 침침한 형광등 불빛이 들어왔다. 내 방만큼이나 익숙한 풍경이다. 시내버스 777번. 버스 기사님이 어깨를 두드렸다.


“뭔 잠을 그래 곤이 자? 여기 종점인데 학생 집이 어디야?”


우리 집은 대한민국 인천시 서구 K동. 인천이라지만 후미진 동네라 시내버스를 타고도 꽤 오랜 시간을 가야 집에 갈 수 있다. 지하철에서 내리고 허겁지겁 뛰어 막차를 탔었는데, 잠깐 새 잠들었나보다. 아무리 술에 만취해도 버스에서 잠들어 내릴 곳을 놓친 적은 없었는데 술 한 잔 마시지도 않은 오늘, 종점까지 와버렸다. 여기서 집까지는 1시간은 족히 걸어야 할 거리. 벌써부터 지치는 기분이다.



기사님의 재촉에 내 옆 자리에서 나처럼 널브러져 쓰러져 있던 기타를 어깨에 메고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어깨를 짓누르는 피곤의 무게가 기타의 무게에 더해졌다. 기타는 대학교 1학년 때 3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으로 샀다. 그 때엔 이 기타가 이토록 무겁지 않았다. 이 기타가 무슨 대단한 특권을 표시하는 징표인 마냥, 나 자신이 대단한 녀석이란 걸 나타내는 증표인 마냥. 다른 학생들이 책가방을 들고 다닐 때 나는 늘 기타를 메고 다녔다. 책가방 대신 택한 기타가 이토록 무거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군에서 제대한 후 모자란 학점을 채우느라 아등바등하며 나는 다시 기타 대신 책가방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이제 내일이면 이 녀석과도 안녕이다. 인터넷에서 이 기타를 사겠다고 한 사람과 내일로 약속을 잡았다. 마지막 날. 그 말이 주는 씁쓸함 때문에 무거운 기타를 메고 학교 동아리 연습실을 찾아갔던 것이다. 이 녀석과는 수많은 하얀 밤을 같이 했고, 공연도 참 많이 했다. 그 시절의 추억이 내게 주는 모든 것들이 이제 내일이면 이 녀석과 함께 떠나간다. 사는 것이 참 피로하다.



가로등을 따라 걸어 나갔다. 처음 와보는 곳이긴 하지만 집이 어디인지는 잘 안다. 저 멀리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반짝이고 있는 공장들이 보이니까 일단 그 방향으로만 향하면 된다. 조난당한 선원이 별빛을 이정표 삼아 육지로 돌아가듯 저 불빛을 이정표 삼아 걸으면 되겠지. 사실 이 도시의 하늘엔 별도 별로 없다.


버스 막차의 종점에서 깨어난 것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인데, 참 우습게도 그런 일을 똑같이 겪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나보다. 저 앞 쪽 가로등 불빛 아래로 나보다 먼저 나와 걷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긴 생머리가 찰랑거리는 것이 뒷모습으로 봐선 여자 같긴 한데, 설마 ‘긴 머리의 남자’는 아니겠지? 한참 기타에 미치고 락에 심취하던 대학교 초년생 시절의 내가 그랬으니 ‘설마’ 하며 웃을 일만은 아니긴 하다.



공항으로 이어지는 왕복 8차선의 도로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한산했다. 한낮에 보는 풍경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다. 도로 반대편으로는 드문드문 불 꺼진 건물들도 보이고 새카만 어둠 아래로 논밭이 보이기도 한다. 자는 동안 멈춰버린 MP3 플레이어의 재생버튼을 누르려다 멈추고 한쪽 귀에 꼽혀있던 이어폰을 뺐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들의 엔진 소리, 아스팔트를 지치는 타이어의 진동음, 그리고 벌레 소리. 무성하게 난 잡초들이 부대끼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고요는 음악 소리만큼이나 들어줄 가치가 있지. 나머지 한 쪽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을 마저 뺐다. 열 걸음쯤 앞에서 걷는 사람의 또각또각 구두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도 들린다. 또각또각 소리로 봐서는 여자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걷다가 종종 내 걸음을 의식하는 것을 보아서도.


‘이거, 참. 괜한 의심 받기는 싫은데 앞서 나갈까?’


확실히 여자 혼자 밤길을 걷기에 안전한 시간은 아니다. 너무할 정도로 한가로운 도로, 등 뒤에 따라오는 남자 – 그것도 흉기로도 짐작할지 모르는 새카만 가방을 둘러 멘. 내가 생각해도 오해하기가 딱 좋은 상황이다. 그래서 앞서가려 걸음을 빨리했더니 앞 사람의 걸음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불쑥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래서는 더 큰 오해를 살 것 같기에 아예 그 사람을 불러 세웠다.


“저기요!”


내 목소리가 치한으로 오인 될 만큼 걸쭉하지 않다는 것은 이런 경우 참 다행이다.


“네?”


그녀- 목소리로 여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는 적잖이 놀란 목소리로 답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어, 괜한 오해 받기 싫어서 그러는데요. 저 나쁜 사람 아니구요, 저도 자다가 종점에서 내렸거든요. 제가 앞에서 걸어도 될까요?”


“아, 네.”


살짝 당황한 눈치였지만 그녀는 내 말에 수긍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면 기타 가방을 흉기가 들어있을 법한 ‘그냥 까만 가방’으로 오해하는 일은 없겠지. 막 그녀 옆을 지나치려는 찰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냥 같이 걸어요. 아저씨 말대로 아저씨가 그리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진 않으니까요.”


그 말을 하면서 그 아가씨도 웃고 나도 웃었다. 어쨌거나 군대도 다녀왔는데 아저씨라 불려도 할 말 없는 나이가 된 건 맞다. 후-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아니 말을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며 아무 말 없이 걷고 있을 때, 정말 고맙게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어 주었다.


“음악 하시나 봐요?”


“아, 뭐 음악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기타를 좀…”


음악을 한다는 말은 너무 거창하다. 나를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사람들과 같은 수식어로 표현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나는 그저 지미 헨드릭스나 잭 와일드 같은 기타리스트처럼 기타를 치고 싶었을 뿐, 나는, 그저 한 때의 나는.


“그 기타 일렉이에요? 아님 베이스? 통기탄가?”


“일렉이에요.”


그래도 이쪽에 관심이 조금은 있는 아가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그 셋이 전부 완전히 다른 악기인 줄로만 아니까.


“아, 그렇구나. 멋지네요.”


그런 말은 참 많이 들었다. 그런 말을 듣기 위해 기타를 그렇게나 열심히 쳐왔는지도 모른다. 선망과 동경의 기타리스트, 그 환상에서 허우적댄 한 명의 재능 없는 기타 키드, 나. 떠나보내야 할 이 녀석의 무게가 어깨를 다시 짓누른다.



음, 그런데 내가 정말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 않아 보이는 얼굴인가? 이 시커먼 밤중에 시커먼 사내와 같이 인적 드문 길을 걸으면서도 환히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걸 보니 어쨌거나 참 성격 좋은 아가씨임에는 틀림없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키에 긴 생머리, 허리 쪽으로 비껴 멘 육중한 크기의 카메라. 겉으로 보기에도 그 발랄함이 느껴진다. 이번엔 내가 먼저 운을 뗐다.


“사진 좋아하시나봐요?”


“네? 아, 뭐, 잘 찍는 건 아닌데 찍는 걸 좋아해서요.”


그러면서 그녀는 허리께에 비껴 멘 카메라를 들어 만지작거렸다.


“카메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좋아보이네요.”


“우리 동건이 몸값 다 하려면 제가 좀 잘 찍어줘야 되는데…”


“네?”


“아, 얘 이름이 동건이거든요. 장동건. 웃기죠?”


음, 그 카메라 이름이 장동건이란다.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웃기진 않다. 내 기타의 이름은 Kid-A. 기타 키드의 첫 번째 기타라는 의미. 내 가장 소중한 ‘자식’ 같은 녀석이란 의미.


“에이, 별로 안 웃겼나보다. 제가 얘를 매일 요 허리춤에 끼고 살다시피 하거든요. 그래서 이름이라도 그렇게 붙여주자 생각했죠.”


“저도 카메라가 있긴 한데 이 녀석은 이름이 없네요. 이름을 붙여볼까요? 송혜교나 한지민 정도로?”


기타 가방의 앞주머니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꺼냈다. 제대하고 기념으로 산 스냅용 소형 카메라다.


“와, 작다. 우리 동건이가 다 좋은데 너무 크고 무거워서… 그 카메라 구경 좀 해도 될까요?”


“네”


그녀는 내게서 카메라를 건네받고는 이리 저리 만져보며 말했다.


“얘 인터넷에서 많이 봤어요. 사진은 어때요? 잘 나오나요?”


“저는 사진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모르겠지만, 그런대로 막 찍어도 잘 나오는 것 같아요. 찍은 거 한번 보세요. 뭐, 보여드려도 문제 될 만한 사진은 없으니까요.”


동건이와 지민이- 즉석에서 지은 내 디카의 이름 -는 같은 회사의 제품인 까닭에, 그녀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능숙하게 사진들을 둘러보았다. 한참 사진을 넘겨보던 그녀가 말했다.


“지금 메고 계신 기타가 이거에요?”


그녀가 보고 있던 사진을 내 쪽으로 보여줬다. 내 기타 사진이다. 인터넷 중고장터에 올리느라 찍었던.


“네. 그거 맞아요.”


“와, 멋지네요. 근데 무슨 기타 사진을 이렇게나 많이 찍으셨대요?”


“이 기타 내일 팔 거거든요. 장터에 올릴 때 첨부하려고 찍기 시작했는데, 이제 앞으로 못 보니까 많이 찍어서 남겨두려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예? 팔고 더 좋은 거 사시려구요?.”


“아뇨. 그냥 요즘 칠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해서요.”


거짓말이었다. 내가 이 녀석을 떠나보내는 것은 지난 몇 년 간, 꿈속에서 허우적거렸던 내 삶에 대한 정리의 의미. 앞으로 나는 밀린 학점들을 때우며 졸업도 해야 하고, 전쟁 같은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아 취직도 해야 한다. 그 길에 내 기타가 설 곳은 더 이상 없다.



대답을 하는 내 표정이 적잖이 우울해 보였는지, 그녀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걸었다. 저 멀리 버스 정류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반은 좀 더 온 것 같다. 그녀와 이야기하며 걷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간 모양이다. 이번엔 내가 먼저 그 침묵을 깨고 말을 걸었다.


“그쪽은 집이 어디에요?”


“K동 근처에요.”


“무슨 아파트요?”


이 동네는 거의 대부분이 새로 들어선 아파트들뿐이라 내 입장에선 자연스러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녀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나보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아파트는 아니고, T아파트 근처에 조그만 집이에요.”


그곳이라면 나도 알고 있는 곳이다. 현재 아파트들이 들어선 자리에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이 철거당하며 이주해 살고 있는 곳. 그제야 그녀의 머뭇거림을 이해했고, 내 질문이 실언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동네를 떠나서 살고 싶긴 한데 아직 여력이 안 되네요. S동에서 매일 막차시간까지 아르바이트 하거든요. 아저씨 혹시 좋은 알바 자리 있으면 소개시켜줘요. 지금 하는 건 시급이 너무 짜서 말예요. 쿡쿡.”


“아, 실례가 됐다면 미안해요.”


그녀에게 미안한 것만큼이나 내 스스로의 짧은 생각과 짧은 시야를 반성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 실언도, 또 그 실언에 대한 사과도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말했다.


“음, 뭐가 미안한지는 모르겠지만. 진짜로 미안하면 아저씨 기타 치는 것 좀 보여줄 수 있어요? 어렸을 때 우리 아빠가 치는 거 보고 그 이후엔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그쪽 아버님이 소싯적에 기타를 좀 치셨나 보네요?”


“네. 어렸을 때 본 거라 잘은 모르겠지만 그 때 기억에 되게 잘 치셨던 것 같아요. 노래도 잘 하셨고.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셔서 못 들어보니까 그 기억 그대로 간직하는 것도 좋잖아요?”


이쯤 되면 어디까지가 내 실언이고 어디까지 미안해야 하는지도 모호했다. 또한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곧이어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 앉아 기타를 꺼내들었다. 앰프를 꽂아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는 일렉 기타를 앰프도 없이, 그것도 인적 없는 8차선 왕복 도로변 버스정류장에서, 새벽 1시에. 이런 경우를 상상이라도 했을까. 그 날은 아무래도 헤식은 달빛과 가로등 불빛에 취해있었던 것 같다.



루시드폴의 ‘나의 하류를 지나’를 연주하며 노래했다. 통기타로 연주해야 하는 어쿠스틱 포크송이었지만 고요한 새벽에선 앰프 없는 일렉 기타의 감질 나는 소리도 의외로 괜찮은 맛이 있었다. 그녀는 내 연주와 부족한 노래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지금 생각이지만 그녀 역시도 헤식은 달빛과 가로등 불빛에 취해있지 않았나 싶다.


“와, 멋져요.”


“고맙습니다.”


기타를 다시 기타 케이스에 챙겨 넣으며 나는 6년 동안 나와 함께했던 녀석의 모습에서 미소를 본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 미소는 내 연주를 보며 보여준 그녀의 미소와도 닮았고, 홀로 기타를 치며 만족해하는 내 미소와도 닮아있었다.



그녀의 집은 버스정류장에서 10분쯤 되는 거리였다. 그 10여분 동안 그녀가 I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것. 카메라와 배낭만 달랑 메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여행 작가의 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기타 안 팔면 좋을 것 같네요. 내가 우리 동건이 껴안고 가는 것 처럼요.”


그녀는 떠나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학교를 다니고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막차시간까지 일하면서도, 그녀는 그 고가의 카메라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물론 ‘그녀의 꿈’이라는 거창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불현듯 사진을 좋아하냐는 내 첫 번째 질문에 답했던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잘 찍는 건 아닌데, 찍는 걸 좋아해서요.”



선망과 동경의 기타리스트, 그 환상에서 허우적댄 한 명의 재능 없는 기타 키드, 나.


나는 내게 말했다.


“잘 치는 건 아닌데, 치는 걸 좋아해.”





정말죄송하지만내


일거래못할것같습


니다정말죄송합니



-010XXXXXXXX








!뱀발 : 개별적인 주제를 가진 단단편 토막으로 기획했다가 어느새 단편 분량이 되는 바람에 분량 조절이 힘들었습니다. 후반부 주제 전달에 직접적인 서술보다는 다른 여러 개별 스토리를 넣고 싶었는데, 욕심에 비해 제가 잡은 시간이 여유롭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예상보다 길어진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장 6시간의 혈투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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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게임] 엠파이어 어스 (Empire Earth)

[이야기의나락] 카테고리의 첫번째 글- 소개에는 영화, 소설, 드라마 이야기를 쓰는 카테고리라 해놓고 첫째는 게임이다.
어쨌든 나를 나락으로 빠뜨린 것만은 분명하니 여기 들어가도 큰 무리는 없겠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Empire Earth ]

대강 해석하면 ‘지구를 다스려라’ 정도? 음-.-
벌써 쓰뤼까지 나온 고전 게임이지만, 이 시대 게임치고는 아직까지 수많은 고정팬을 확보한 역사RTS시뮬레이션의 명작이다.

비슷한 게임으로는 역시 쓰뤼- 까지 출시된 [에이지오브엠파이어] 와  엠파이어어스와 같은 제작사인 스테인리스스틸(Stainless Steel, 뭐 제작사 이름이 이래? 게임 인트로에 나오는 제작사 오프닝도 쇳물이 지글지글 끓다가 꽝하고 도장을 찍으면 이름이 새겨지는 그런 식이다-.-) 에서 나온 [엠파이어즈] 등이 있다. 혹자는 여기에 [문명]을 끼워넣기도 하지만, 문명은 턴제니까-.-

그 먼 옛날, 코어클럭 66메가헤르쯔의 기절초풍할 스피드의 486DX-2 로도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 부터. 내 컴퓨터에는 언제나 역사RTS 하나쯤은 깔려있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 시절 RTS 에선 상상도 하지 못하던 ‘시대업그레이드’ 가 도입된 [에이지오브엠파이어]
이순신과 유성룡이라는 당대 최고의 히어로 캐릭터가 말도 안되는 무위를 자랑했던 [충무공전]
건물 대 인간의 크기 비율을 현실적으로 맞춘 [에이지...]의 후속작 [에이지오브엠파이어2]
이전에 비해 훨씬 깔끔해진 그래픽,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날씨와 밤낮,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말 성우의 구수한 리액션 사운드’가 훌륭했던 [임진록]
뭐, 꼽자면 한둘이 아니나-

이 모든 것들을 다 아웃오브안중하며 역사RTS 는 이게 킹왕짱! 이라고 외칠 수 밖에 없는 이 녀석,
Empire Earth (이하EE) 를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EE 는 이름부터가 좀 아류스러워서 처음 릴리즈 됐을 때부터 에이지오브엠파이어(이하 에이지)의 그늘에 가려있었다. 그래픽도 에이지에 비하자면 썩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없는데다가 석기시대부터 제국시대(산업혁명 이전)까지만 다루었던 다른 RTS 에 비해 선사시대(Prehistoric Age) 부터 나노시대(Nano Age) 까지 총 12개시대를 오가며 돌팔매부터 플라즈마레이저까지 써대는 아스트랄한 광경은 많은 게이머들의 눈을 돌리게 했다.

하지만 EE 만의 장점.
지금까지 해본 어떤 게임보다 최적화가 잘 되어 있어 비교적 저사양의 컴퓨터에서도 대규모 교전을 즐길 수 있다는 점, 상대적으로 손쉬운 시대업그레이드로 운영의 묘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끝끝내 수많은 게이머들을 매료시켰고 전세계에서 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려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사실 제작사의 입장에선 EE 가 에이지의 아류라는데에 큰 반감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작자가 같거든?
사용자 삽입 이미지릭 굿맨- 스테인리스스틸 스튜디오 대빵- 뒤에 떠 있는 모니터의 그림은 [엠파이어즈]다.
에이지의 제작사인 앙상블 스튜디오에서도 메인 프로듀서였다니 에이지도 엠파이어즈도 그리고 EE까지도 전부 이 사람 머리에서 나왔다고 보면 되는거다.
좀 역사RTS 만들기에 어울리는 얼굴인거 같긴 해? -.-

음,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제 시작해볼까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설치중 화면-
이전 컴퓨터에선 설치 눌러놓고 한참을 딴짓하며 시간을 때워야 설치 되던게 지금은 완전 순식간이다. 확실히 고전게임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장면. 왼쪽의 그림이 굼뜨게 바뀌며 설치 퍼센트에 따라 선사시대부터 나노시대까지 이 게임의 요소요소를 보여주는 의도였겠지만, 요즘 사양의 컴퓨터에서는 너무 휘리릭 지나가 제작사의 의도를 많이 희석시키는 감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랜덤맵, 흔히 말하는 Skirmish Mode.(스타크래프트에선 Play Custom Game)
정해진 맵이란게 없고 항상 랜덤으로 맵이 생성되기 때문에 맵의 크기, 맵의 타입(평원, 대륙, 소규모섬, 대규모섬, 산맥 기타 등등), 시작시대, 종료시대, 유닛상한, 난이도, 게임속도, 리비얼맵여부(맵을 전부 보여줄건지 미개척지를 암흑으로 가릴건지 결정) 등등, 스타에 비하자면 설정해야 될 것들이 좀 많다. 그래서 그만큼 다양한 요소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것. 위의 스샷은 일반적으로 내가 가장 많이 선택하는 옵션이다. 제국시대를 넘어 근현대로 넘어가면 게임이 좀 아스트랄해지는 감이 있어서 그 이상은 별로 추천하지 않음. 사실 이 정도까지만 해도 총 7개의 시대, 6번의 시대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충분히 아스트랄하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문명 보너스 선택-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먼저 문명 보너스 (Civilization Bonuses) 를 선택해야 한다. (안해도 되지만 안하면 손해니까)
300종의 유닛이 전부 분류되어 있는건 아니고 유닛의 특성에 맞게 뭉뚱그려져 있다.
왼쪽에 선택된 내용은 일반적으로 내가 흔히 사용하는 문명보너스 스킬들인데, 대강 둘러보면 이렇다.

Citizens & Fishing Boats
 - 20% Cost Reduction : 시민 생산비용 20% 감소 (푸드50인데 40이면 된다)
 - 20% Speed : 시민 이동속도 20% 증가 (이거 하나로도 채집, 벌목량이 증가하니까)

Civ – Bldgs, Walls, & Towers
 - 30% Build Time Decrease : 건물, 벽, 타워의 건설속도 30% 감소 (성벽 지을때 이거 없으면 지루해)

Civ – Economy
 - 15% Gold Mining : 금 채광 15% 증가
 - 15% Iron Mining : 철 채광 15% 증가 (이 두 자원은 항상 부족하다)

Field Cannon & Anti-Tank Guns
 - 20% Speed : 야전대포의 이동속도 20% 증가 (얘는 워낙 느리니까 이거라도 해줘야)

Infantry – Ranged
 - 20% Range : 장거리 보병 사정거리 20% 증가 (나중에 총병들 나오면 전부 올라간다, 궁수는 해당 안됨)

Infantry – Sword
 - 20% Armor : 검병 방어 20% 증가
 - 20% Attack : 검병 공격 20% 증가
 - 20% Hit Points : 검병 체력 20% 증가 (이 세개는 총병 나오기 전까지 버티기 위해)


처음엔 이게 뭔지도 몰랐다가 나중에 안 이후에도 에이 이딴거 뭐 대충- 하며 되는대로 찍었었는데, 이 차이가 결국 결정적인 차이를 낳는다. 절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선 안 될 대단히 중요한 부분.

사용자 삽입 이미지석기시대를 지나 위 스샷은 Copper Age (구리시대)
맵 사이즈를 Huge 로 해놓을 경우 대강 요 타이밍, 석기시대와 구리시대 사이쯤에 적의 공격이 있다. 구리시대로 시대업을 하느라 아군의 유닛수는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 득달같이 달려드는 적 버서커(Bursuker)의 수는 악! 소리 날 정도로 많다. 지금 화면에는 다 잡히지 않았으나, 지금 화면에 나온만큼 오른쪽 뒤에 더 있었다-_-

하지만 나름 베테랑 EE 플레이어인 내가 이 정도에 굴할쏘냐 -0-
병사의 수를 조절하며 급히 구리시대로 넘어간 이유가 있다. 구리시대에선 Clubman 을 Maceman 으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기 때문.
이미 적과의 교전이 있기 아주 약간 전 타이밍에 메이스맨 업그레이드를 눌러놓았다.
그래서 돌팔매질을 적당히 맞아주며 시간을 끌어주며 도망가는 중.

사용자 삽입 이미지내 본진에 다다르기 급 전에 메이스맨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다.
업그레이드 되자마자 반격!
누누히 말하지만 적은 이거 말고도 저 뒤에 더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완벽한 승리-
비록 체력 1 남은 메이스맨이 덜덜거리고 있긴 하지만 단 한 명의 유닛도 잃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업그레이드의 위력이며, 이 게임의 묘미 되겠음 -.-.-

사용자 삽입 이미지청동기 시대-
이쯤 되면 군사를 몰고나가 전투를 벌이는데, 아주 간지가 폭풍처럼 넘친다.
제일 선두의 기사는 기병이 아니라 유니크 캐릭터인 ‘전략가’ Alexander The Great- 매 시대마다 이 녀석들도 업그레이드를 눌러줘야 한다. 각 시대별로 유명한 역사캐릭터는 거의 다 나오는 것 같음. ‘전략가’ 의 경우 공격 능력은 변변찮으나 무시무시한 Heal 능력이 있어서 잦은 전투에도 병사들 체력을 유지시켜준다.

어쨌든 큰 시대변혁이 없는한 뽑아놓은 병력은 시대업에 이어지는 유닛업으로 한번 더 써먹을 수가 있게 된다. 아까 뽑아놓은 클럽맨이 메이스맨이 되었다가 청동기시대에 단검병(Short Sword) 으로 업그레이드 된 모습. 아까 적이었던 Bursurker 가 업그레이드 되면 요 스샷처럼 하얀색에 문명색을 덧입힌 간지나는 코스튬으로 변모하며 궁수가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시대는 흘러흘러 어느덧 제국시대.
내가 정해놓은 마지막 시대 되겠다. 이쯤 되면 내가 구성하는 최강의 부대가 완성된다.
1번에는 위생병(Medic)과 전략가(Strategist) 가 한 팀이 되어 병사들 체력을 채우고,
2번에는 걸어다니는 대포들인 총병(Musketeer) 이 하나 가득 (스샷에서 양 사이드)
3번에는 현대의 스나이퍼를 연상시키는 샤프슈터(Sharp Shooter) 가 주 전력이다. (스샷에서 정 중앙)
4번에는 시즈탱크보다 더 엄청난 공격력과 스플래시데미지를 가진 봄바드(Bombard) 가 포진되어 있다. (스샷에서 아래)
이 정도 규모가 되면 거의 맞서싸울 적수가 없을 정도.
교전 즉시 사망이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게임의 막바지, 수색작전 중.
게임의 제목답게 적의 본거지를 모두 소탕한다고해서 게임이 끝나는게 아니다. 최후의 1인까지 모두 ‘죽여야’ 끝나는, 진짜라면 좀 섬칫한 엔딩.
전 유닛을 모두 풀어 전 맵을 뒤지고 있다. (미니맵을 보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끝나고나면 게임의 결과를 아주 일목요연하게 여러 측면에서 보여준다.
군사적측면, 경제적측면, 사회적측면, 시대업한 시간, 기타 등등-
가장 재밌는게 요 타임라인(TImeline) 인데 총 인구 / 시민 인구 / 병력 규모 등을 시간별 그래프로 볼 수가 있다.
이걸 주욱 보다보면 한 문명을 이끌며 겪었던 중요한 시대적 이슈(물론 대부분 전투지만) 를 되돌아 볼 수 있고, 치열하게 치고받은 두 문명의 흥망성쇠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마지막 스샷에 마지막 시간 보이는가?
253분 59초. 다시 쓰면 4시간 13분 59초동안 플레이했다는 얘기.
이것도 나름 내가 요령이 생겨 빨리 끝낸편이라고 보면 된다.
7,8시간까지 플레이한 적도 있으니 정말 이만큼 킬링타임하는데 좋은 게임도 없지 싶다.

컴퓨터를 새로 구입하자마자 EE의 후속작인 [엠파이어어스2] 를 돌려봤으나, 본작만큼의 완성도는 없는 듯 했다. 그래픽은 분명 화려하고 모션도 깔끔하지만 본작에서 감탄했던 ‘손쉬운’ 여러가지들이 좀 더 복잡하고 귀찮아졌다 할까. 결국 게임의 아이디어란 복잡스럽게 감탄스러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듯 싶다.

이전까지 새 컴퓨터에서는 아직 EE 를 돌려보지 않았다가 다시 설치한 이유는 우연히 EE3 가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스샷을 둘러보다 스샷만으로 실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EE3 는 시대가 ‘근/현대’ 뿐이란다. 게임 분위기도 EE 스타일이라기보다 워3 같은 느낌인게, 무슨 판타지 게임과 C&C 를 섞어놓은듯한 느낌이라 EE 원작의 매니아인 나로선 실망을 느낄 수 밖에.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래픽은 화려해졌다 하나, 이 무슨 아스트랄한 배경인지.

어쨌거나 추억을 살려, 오늘도 EE 한판 더 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