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사색휴지통

not enough communication

혼자 사는 세상은 너무 외롭지.
릴케의 누구나 혼자입니다- 를 일곱번 읽을만큼 좋아하지만,
그 말이 그냥 외로우니 견뎌라- 라는 뜻일까.
세상 사람 모두가 외로우니 서로 외롭지 말자는 뜻이 아닐까.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화.
말이든 글이든 눈빛이든 감촉이든.

터전 잃은 새끼 제비처럼 방황한다.
댓글도 방명록 글도 모두 확인했는데 블로그를 다시 들어오고,
하나하나 글을 모두 읽었는데 지인들의 블로그를 다시 찾고,
싸이까지 찾아가 글을 다 읽고나서,

나는,
나침반을 잃은 조타수가 되었다.
멍하니 빈 수평선만 바라보고 있다.

책과 대화하고, 영화와 대화하고, 음악과 대화하고, 코드와 대화하고, 게임과 대화하고,
이런거 하나도 재미없다.
다시 말하면,
그건 그냥 나 자신의 외로움과의 대화일 뿐.

사람 살이가 그리 재밌는 일은 아니다.
모두들 Log-on 인데,
내게는 모두 Log-off 다.


웹이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
관계를 만들고, 의미를 만들고, 의미 있게 때울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나라는 말뚝을 크게 박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나의 기록이 가능하여야 한다.
또한 그 일이 누구에게도, 특히 나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나서 나를 공개하는 일에 주저가 들지 않게 해야 한다.

나를 확인하면서 타인을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하면서 나를 둘러보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고 은근하게,
부담과 압박 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외롭지 않아야 한다.
외로움을 곱씹는 순간의 탐미조차도,
외로움 안에 썩게 두어서는 안 된다.
곪고 상처 받는 일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위안 받을 여지를 남겨야 한다.

더이상 혼자이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믿게 해야 한다.
나를 말하고, 나에 대해 들어줄 누군가를 만드는 일.
그럼 너 역시도 너를 말하고, 네가 말한 그 모든 것들을 들어줄 수 있다.

이것은 공학이 아니다.
웹 프로그래밍, Rich Internet Application 같은 도구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나는 그 도구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도구가 만들 새로운 세상, 새로운 패러다임을 끊임없이 꿈꾸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래서 배우고 있는 거다.
도구가 무엇인지 모르면서는 도구로 만들 세상을 꿈꿀 수 없으니까.

네트웍의 공학적 설계는 치밀하고 세심하다.
그리고 전체적인 틀에서 보면 다분히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웹은 왜 이 모양이냐.
그런 복잡하고 세심한 틀에서 짜여진 메커니즘 위에,
어째서 이런 단순하고 재미 없는 어플리케이션 레이어가 애드온된 것이냐.

request 하고 accept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send 하고 receive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synchornize 다.
그게 마음이 됐건, 사랑이 됐건, 꿈이 됐건, 희망이 됐건 간에.

너희들이 지금 하는 일들은 죄다 1g 도 creative 하지 않다.
진짜 creative web 이란,
돈을 조금 더 벌 수 있게 하는 것,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을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것.
그런데 쓰이는 것이 아니다.
진짜 creative 한 생각은,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거대한 트리의 노드 구석구석까지 파급력이 다다를 수 있도록,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유저에게는 한가지 목적만 주면 된다.
그리고 그 한가지 목적을 위해 단순한 몇가지의 행위만 정의해 주면 된다.
나머지는 알아서 잘들 할 것이다.
그 안에서 새로운 방법, 보다 더 창의적인 방법, 보다 더 편한 방법을 찾을 것이다.

웹은, 아니 네트웍은, 아니 이 사회는.
기본적으로 communication 기반이다.
그걸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내 request 의 receiver 가 machine 뿐이라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내가 입력한 정보의 수신자가 나, 너,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그것이 빠진다면 다른 모든 화려한 백그라운드는,
그저 유치한 혹은 게으른 방법론일 뿐이다.

not enough communication

생각은 폭풍처럼 휘도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Nowadays,

0.

우리 말로 옮기면 ‘근황’ 정도 되려나. 이번 주 미수다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외국 사람들도 자기 나라 말에 다른 나라 말 섞어 쓰는 거 별로라고 생각한다더라. 되도록이면 우리 말을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1:1 치환이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나도 영어 쓰는 비중이 조금 높은 편이긴 한데, 뭐 줄여야지 맘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OOP 로 쓸 걸 객체지향프로그래밍으로 쓰기엔 너무 비경제적이고. 클래스, 메소드, 멤버, 스크립트, 컴파일, 코드, 포인터 이런 말들은 애초에 대안으로 쓸 단어가 없으니까.

어쨌거나 Nowadays. 그냥 이 말 어감이 좋다. 일단 근황보단 좋다.


1.

마음은 그게 아닌데 쿨한 척 했다가 수습하느라 고생 중이다. 모든 일은 뒷 수습이 어려운 거지. 그래서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추진하는 것이 좋은 거다. 뒤돌아보니 최선의 결과를 생각하고 다 질러 놨더라고. 그래서야 될 일도 안 되거니와, 일단 좀 힘들고 골 아프고 그렇다.

쿨한 척은 쿨해진 다음에 하자- 라는 큰 교훈.
친구들, 조만간 술 좀 붑세나.


2.

친절하다는 이미지는 피곤하다. 때로 이게 엄청난 짐인데, 친절보다 더한 감정이 덧대어지면 이건 뭐 도무지 걷잡을 수가 없다. 특히 요즘은 그냥 나를 잃어버린 느낌, 아니, 그런 지경. 하고 싶은 말들 꼼꼼히 숨기고 사는 게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친절과 배려와 관심, 그리고 사랑은 출발도 모호하고 분기도 애매하다. 지금 나는 그냥 뭐가 뭔지를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웃고 돌아서 씁쓸해 하며 사는 게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저,
사는 것이 피로하다.


3.

사람이 사람을 이용한다는 말은 그냥 듣는 것만으로 참 불쾌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이용은 그냥 유리한 데로 쓴다는 말이다. 분명 나와 사람들은 적당히 쓰고 적당히 쓰여지고 있다. 그 말에 화가 나는 때는, 분명 내가 쓰여진 만큼 쓰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고맙다- 라는 말보다 더 큰 보상을 기대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고맙다- 라는 말이 싫어진 것 같다.

그런데 그마저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내게 하지 않으면,
진짜, 나.
어떻게 해야 되나.


4.

너무 외로운 것은 정말 나쁘다. 자의든 타의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건 나쁘다.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모든 것들이 잘려 나갔고, 모든 것들이 잘려 나갔는데 하나도 명료하지가 않다.
다 사라지고 남은 게 그저 나 뿐이다.
긍정할 대상도, 부정할 대상도, 분노할 대상도, 무시할 대상도,
그 어디에, 그 무엇도 없다. 나 밖에 없다.
……제길 그래서 이러고 있나보다.
…………그러니까 참한 아가씨 하나만 소개시켜줘. 사촌누나동생,선배,후배,동기,친구들은 폼으로 있냐? 응?


5.

언더플롯, 행간의 진실, 말 속의 뼈.
얘네들을 나는 참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뭔가 가려진 의미를 담는 때가 많다. 종종 당연히 알아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다, 낭패를 본 경우도 적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정말 모르는 건지,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건지 알아낼 방법이 도무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선 언더플롯을 끼웠던 플롯 자체가 사라지고, 행간이 무너지고, 말이 꼬인다.

때문에 중요하다 싶은 말, 특히 내가 좀 치이겠다 싶은 말은 올곧게 가야 한다, 고 생각은 한다.
물론 맘처럼 안 되는게 문제지.


6.

되게 많이 쓴 거 같은데도 아직 할 말들이 쌓여있다. 맘 터 놓고 술이라도 부어야 하는데, 또 여의치 않은 것들이 한 둘이 아니고. 시가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하셨던 나의 시인처럼, 나 또한 글이 마구 쓰여지는 것이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다.

다시 쓰자.
사는 것이 참 피로하다.

사는 것이 참 피로하다.

공부, 공부, 공부-

삶이 늘 공부긴 하지.
모르는 건 너무나 많고, 배울 건 너무나 많고.
공부만 하다 죽어도 모자를 인생이야.
그래도 살려고 배우는 것보단 무언가 해보고 싶어 배우는 게 나아.
공부만 하다 죽는 건 안타까워도 무언가 끝없이 해보다 죽는 건 괜찮아.
아직, 하고 싶은 거 많잖아.
공부하자.


8086 Assembly 프로그래밍,
골은 아파도 재밌으니 봐준다. 리팩토링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고.

C 기반 (gcc) Socket 프로그래밍,
뻥 온라인 만들려면 빡씨게 해야지.

C 라이브러리 기반 OpenGL 프로그래밍,
MFC 없인 테스트 유닛에 지나지 않고, 3D 모델링부턴 정신 없을테지만 아직까진 할 만 하다.
그러나 이론은 알고리즘들이 죄다 수학이라 뒷골에 경련 오기 직전.

C++ 템플릿 기반 Data Structure,
걱정보다 기대가 앞서는 과목. 다른 언어들을 배우다보니 알게 된 거지만, C++ 은 짜증나도록 비 OOP 적인 언어. C++ 공부하는데 너만큼 도움되는 과목도 없겠지.

Ruby 프로그래밍,
레일스 학습을 위한 선수학습이 시작이었는데 이젠 네게 반해 버릴 거 같아.

Ruby On Rails,
할 일은 많은데 진도는 늦다. 뿌리같이 박힌 다른 언어들이 걸림돌.

ORM 기반 DBMS 처리,
MySQL 만으로도 솔직히 벅차지만. 내가 만들어내고 싶은 모든 것들이 너 없인 안 되니 별 수 있나.

Actionscript 3.0 – 플렉스, 플래시.
AS 3.0 의 세계는 간지럽게 오묘해. 요즘 들어 절실히 느끼지만 그래도 넌 C++ 에 비하면 훌륭한 OOP 언어.

AJAX,
레일스 배우다가 엉겁결에 다시 공부 중. 개발자들의 피와 땀과 삽질이 범벅되어 정신 없는 녀석. 그 땀내는 충분히 맡을만하다.

리눅스,
커널 설치를 위해 하드를 하나 사야 하나. 생각해보니 지금 사놓은 책 살 돈이면 저렴한 하드 하나 샀겠구나.

DTD XHTML, CSS.
블로그 스킨 말고도 네가 쓰일 데는 많아.

물리,
가우스 그 새퀴는 조낸 해 놓은 것도 많아.

화성학, 스케일.
기타 형들한테 복음 받았던 그 수많은 지식들이 어느새 rm*
새로 가자, 기타 프렛에 점 우수수 찍히는 그 날까지. 손가락이 멜로디를 타고 노는 그 날까지.

사람, 친구, 사랑.
그렇게 모르고 살았는지 몰랐네. 그런데 이거 공부는 어디서 해?



아, enermeration buffer overflow-
쿡.

사놓은 책들을 두루두루 뒤적거리다가 두드렸다.
이렇게 많은 책들을 사놓고 할 거 없다고 종일 빈둥거렸으니,
할 말 없지.

이건 나름 반성문 포스트.

Tuning

연습용/합주용 기타로 사용하려고 지난 추석 준영이 기타를 빌렸다. 오래도록 집에 묵혀두다, 오늘 합주에서 새 줄로 갈고 처음 써보게 됐다. 그런데 이거 오래 안 써서 그런지 튜닝에 좀 문제가 있었다. 브릿지도 손 봐야 할 거 같고, 뒷쪽에 스프링 문제도 있고, 피치도 좀 맞춰야 할 것 같고. 뭐, 그렇다.

이런저런 문제들로 어쨌든 그 기타로 합주를 하게 되었고, 촉박한 합주시간에 쌩쑈를 벌였다. 정음도 반음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듣고만 있어도 신경이 거슬리는 합주음을 만들어내며, 합주시간을 채워버렸다. 우리 팀은 합주는 별로여도 분위기만은 항상 좋았는데, 합주가 끝난 뒤 나 그냥 원큐에 저 밑바닥까지 침울해져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합주곡을 듣다가, 부르다가. 도저히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 루시드폴을 들었다. 차로 가득찬, 비오는 도로. 말없이 지쳐대는 헤드라이트의 불빛. 나의 하류를 지나 한없이. 더이상 밑으로 내려갈 곳이 없을만큼 내려 갔을 때쯤. 비가 그치고 길이 뚫렸다.

해의 고향은 서쪽바다, 노랗게 곪아 흐르는 시간.

나의 하류를 지나 다다른 곳에. 예전과는 다른 내가 있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고 첫사랑 그녀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그저 그렇게 공허한. 나 자신.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있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기 싫은. 공허한 수동태의 그저 나 자신.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들이 비어 있었다. 평생토록 안고 가야 할 것만 같았던 그 수많은 것들이. 돌아보니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런 애달프고 아린 마음들이, 단어들이, 감정들이. 그 모두가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리고 그 자리가 한숨 섞인 담배연기와 견디기 힘들 만큼의 외로움들로 채워져 버린 걸까.


정음도 반음도 아닌 귀에 거슬리는 음으로,
너와 나는 오래도록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더이상 버티기가 힘들 때 쯤이면 그만 둬야 하는데,
나 너무 많이 와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그만 두게 해 달라고 울부짖다가, 제발 바라봐 달라고 애를 쓰다가,

나-
그냥 이렇게 담배만 피워댄다.
이런 내가 한없이 작다.

한없이.

A New Beginning- 잘하자!

언제나 시작의 선에 서면 설레고 떨린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의연하려고 했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다 부질 없다. 그냥 늘 그런 것이다. ‘시작’이라는 행위를 하면 으레 그냥 그런 것 뿐이다. 이런 설렘과 떨림마저도 ‘시작’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미 시작했다고 봐도 좋다. 그러니,
잘하자. 시작만 했다 하면 긴장 타는 소심한 심장에게.

신청하고자 했던 모든 과목이, 비록 시간표 그대로는 아니지만 대부분 들어갔다. 프로그래밍 과목들로 나름 도배가 되었기에 꿈도 크게 갖고 있다. 과외니 알바니 하는 것들도 없고, 공연곡은 이미 윤곽이 다 드러났으니 봄공연 때만큼 심하게 나를 괴롭히진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방해요소는 제거됐다. 이래 놓고도 지난 네학기와 똑같은 꼬라지를 벌인다면, 나는 나를 용서하고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잘하자. 그동안 끝없이 믿어주고 이해해주던 너 자신에게.

방학 기간 공부하려고 준비했던 많은 것들이 미진했다. 공부와 동시에 만들어보고자 했던 여러가지 아이디어도 그냥 아이디어로 그쳤다. 근데, 이거, 왜. 개강 다 되니까 급 하고 싶어지는거니. 조바심 내지 말고 차근차근 해보자. 이제 나는 중학교 때부터 그토록 꿈 꿔 오던 시절을 맞이했잖은가. 프로그래밍이 곧 공부가 되는 것. 내 인생에 이런 호시절이 언제 다시 오겠나.
잘하자. 내가 꾸었던 꿈에게.

나 자신을 가꾸기 위해- 라는 이름으로 방학 기간 하려 했던 두가지. 아침형 인간 되기와 꾸준히 운동하기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거 없이 흐지부지 넘어갔다. 개강, 새로운 시작. 내가 그토록이나 좋아하는 단어 A New Beginning- 그러니까 너희들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침형 인간은 1,2교시 도배해놓은 시간표 덕에 어쩔 수 없이라도 지켜질 것 같고. 운동하기는 엘레베이터를 잊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참고로 우리집은 13층-.-) 어쨌든,
잘하자. 거울 속의 나에게.

나를 이해하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부어주는 사람들,
착한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그들을 위해서라도.

잘하자, 정말로.

디카 메모리에 저장된 사진들도 짐이다.
수정해야지, 맘만 먹으면 5분도 안 걸리는 건데, 그게 또 영 귀찮다.

매일매일 샤워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도 짐이다.
영원히 안 씻고 살 수는 없을까, 하다가도.
스스로가 못 견디는 타이밍은 언제나 온다.
기름기 줄줄 흐르는 얼굴에 열까지 오르면, 나는 내게 말한다.
gg-

매 끼 밥을 챙겨 먹는 거, 이거 좀 큰 짐이다.
그러면서도 매 끼마다 오늘은 뭘 해먹을까 고민에 휩싸이는 거 보면,
6개월의 취사병 경력이 좋았던건가 싶기도 하고.
예전 같았으면 그거 고민할 시간에 라면을 끓이든 계란 후라이를 해놓든 했을텐데.

그저 눈을 뜨고 살아 가는 것이 짐이다.
늘어 가는 것은 빈 담배곽들 뿐.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관한 고민은,
그냥 고민이다.
고민에 대한 답은 있지만, 답을 위한 행동은 없다.
늘,
언제나,
그래왔듯.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짐이다.
뭔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짐이다.
받아놓은 영화, 드라마, 게임도 짐이다.


그냥 살아가는 이유가 이 모든 짐들 때문인가.

그런데,
스스로 우울해지고 고독해지는 것도 짐일걸?
그 짐 내려놓는 쌍콤한 기분을 위해 살면서, 그걸 무겁게 생각하는 건,
참 여러모로 생각해도 병신짓.

병신짓 그만하고,
자자.

(아, 매일 자야 되는 것도 짐이야)

스포츠는, 응원하면서 보는 거다.

1.

대체 뭐가 그렇게 비난 받을 일을 한 거냐. 그렇게 ‘성의 없는’ 경기였나. 아니면 백드롭 섬머쏠트를 날리며 빨간색 카드들로 얼룩진, 올림픽 정신을 훼손한 ‘비신사적’ 경기였나. 이탈리아전 3:0 패배가 충격이긴 하지만 그 경기 자체가 국가의 수준을 의심 시킬만큼 ‘수준이하’의 경기였나. 단지 같이 붙은 팀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졌다. 그게 다다.

2.

단점에 대한 지적, 객관적인 문제 분석은 사실 감독, 코치진만 하면 된다. 방송사 해설 위원도 나름 자신이 하는 말들의 설득력을 위해 (너무 긍정적인 평가로만 몰리지 않기 위해)  다소의 지적을 섞어줄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것조차 필요 없는 짓이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없는 백해무익한 짓거리일 뿐. 여기서 축구 경기 때마다 술 취해 큰 소리로 떠드는 아저씨들은 말할 가치도 없다. 스포츠는, 응원하면서 보는 거다. 이런 일반적인 개념조차 없는 인간들은 스포츠를 볼 자격도 없다.

3.

많은 수의 대한민국 국민들을, 하나의 개체로 본다면. 스스로가 좀 쪽팔려야 되는 것 아닌가. 월드컵 4강 진출 했을 때 그렇게 좋아하고 열광했으면서. 월드컵이 있던 한달여간 축구 생각에 신바람이 나 했으면서. 곧바로 그렇게 못 해주니 한국 축구 씨를 말려야 한다느니 떠들고 있다. 냄비근성이고 후진국 응원문화고 지랄이고,  이건 그냥 쪽팔려야 되는 일이다. 한국 축구가 하나의 개체라면 화가 나 주먹을 날릴 지도 모르겠다.

4.

많은 수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특히 나이 좀 된 어른들은. 예전엔 헝그리 정신이 있어서 이렇게 안 졌다고들 말한다. 그땐 다들 정말 열심히 뛰었다고, 요즘 애들은 열심히 안 뛰고 슬렁슬렁 걸어다니기 바쁘다고 화를 낸다. 한마디로. 박정희 미싱하는 소리다. 박통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에 이 나라가 지금 이렇게 개고생하는데도 또 그 소린가. 발전하는 경제 외에는 아무 것도 챙기지 못했던 그 시절처럼, 지금 당신들의 삶도 그러한가. 그저 지금보다 돈만 잘 벌 수 있다면, 공기가 나빠지고 독재가 창궐하고 비리가 만연해도 괜찮은가. 지금 당신들의 삶도 그렇게 헝그리하고 처절하지 않으면서, 축구 선수들에게만 그런걸 요구할 권리, 없다. 그 누구에게도.


5.

이런 논쟁이 벌어지면 세금 이야기를 한다. 우리 세금으로 운동하는 애들이라고. 웃기고 있다. 나라에서 얼마나 대단한 지원을 해주었고, 또 그 지원에 국민 개개인이 얼마나 큰 부담을 짊어졌다고 생각하는걸까. 스포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일종의 홍보성 예산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기에 비신사적 행위나 극도의 수준이하 플레이로 나라를 망신 줄 정도라면, 국가의 대표라는 책임을 유기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들을 비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력이 떨어진다고 비난할 권리까지 주어지기에, 당신들은 그동안 너무 무관심 해 왔다. 비난 할 시간에 K 리그 표를 사라.

6.

우리 아버지가 축구만 보면 하는 말이 있다.
“밥 먹고 축구만 하는 것들이 저것도 못하냐”
그럴 때마다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말이 있다.
“아버지도 매일 하시는 일에 세계 최고는 아니잖아요”


7.

선생님의 따끔한 충고로 학생이 올바른 길로 들어서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동료나 제삼자의 비난으로 좋아지는 경우는 없다. 아예 없다. 사람은 긍정의 힘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긍정하지 않고 비난만 해서는 그 어떤 긍정적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없다. (그리고 이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스포츠를 보면서 그들을 욕하는 행위는 참 무진장 저열한 수준의 자기 만족일 뿐이기에. 굳이 내가 말릴 권리까진 없는 것 같지만. 인터넷이든 술집에서든, 떠들지마라. 시끄럽다.

바람이 분다

거실 쇼파에 누워 TV를 보다가 잠들었다.
언제나와 같이 주제를 특정 지을 수 없는 요상스런 꿈들.
깨어나 담배를 입에 물고 저 바깥을 향해 감정의 찌꺼기들을 내뿜었다.
나 아닌 모든 것들이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 아닌 모든 것들이.

이런 날, 음악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멍하니 나를 바라 보는 데에는 바람 소리와 숨 소리, 잔잔한 키보드 타이핑 소리가 더 좋다.
이런 날에는 그 무엇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그게 좋다.
오래 전부터 늘 기다려 온 내 몸과 내 마음의 속삭임이, 한 걸음 더 다가온다.

이 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당장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
자괴, 두려움 따위의 자조는, 늘 나를 머뭇거리게 한다.

외로움은 미필적 고의.
그러나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조가 깊어지면 그것은 명백한 고의가 된다.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 내 감정을 오롯이 표백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사랑하고 싶다- 를 사랑하고 있다- 로 교묘히 (나조차도 모르게) 치환하는 것이 옳은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이 밤,
바람이 분다.

이 밤, 그저,
사랑하고 싶다.

‘시국’ 에 대해 몇가지-

0.

‘시국’이란 말은 처음 써본다. 정말 처음이다. 원래 이런건 정치인이나 정치평론가들이나 써야 할 말 아닌가?
그런데 요즘 아고라든 블로고스피어든 돌아다니다보면 정말 자주보게 되는 단어가 ‘시국’이다.
그대로 풀면- ‘현재의 이 나라’
스물네살 놀자 대학생이 바라보는 현재의 이 나라, 시국에 대해 몇가지 적어보고 싶다.

1.

최근 내 네이트온 대화명들-

‘내가 한지민한테 청혼한거랑 뭐가 달라?’
 - 재협상은 아니다. 죽어도 아니다. 하지만 재협상에 ‘준’하는 모든 조처를 취하겠다. 그래서 취한 게 겨우 그거? 그게 내가 한지민한테 청혼한 거랑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거냐.

‘한지민이 TV에서 날 보고 웃어도 청혼으로 간주’
 - 죽어도 싫다는 애들 데려다놓고, 걔들이 고개 까딱이면 긍정으로 간주하면 되나. 미국은 끄떡도 안 하는데 수입업자들이 서면으로 약속하면 그게 긍정이야? 그럼 우유 광고마다 나보고 빵끗빵끗 웃어주는 우리 지민이는 이제 내꺼 하면 되는거야?-.-

‘이제 진압도 민영화냐’
 - 수도, 전기, 금융에 이어 진압까지 민영화로 하시겠다는 스테이지. 그런데 어쩌냐. 그런 뻔한 속 다 보고는 옷깃도 안 스치곤 거리로 활발하게들 나가시더라.

‘팬티만 갈아입으면 샤워 안해도 되는거냐’
 - 정말 원하는 건 너라고 너.

2.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살면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외울 수 있는 문장이 생각해보면 참 몇 개 안 된다.
이번에 제대로 외웠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3.

이 나라의 오도된 좌우 균형감각은 애초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 오던 문제지만.
이번 문제로 우리나라가 드디어 진짜 왼쪽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가짜 오른쪽에 살고 있던 할배들은 이거에 좀 놀랐나보다.

가짜 오른쪽에서 보는 가짜 왼쪽은 국군 때려잡던 빨갱이 인민군이겠지만,
진짜 오른쪽에서 보는 진짜 왼쪽은 ‘바뀌어야 할 것은 바뀌어야 한다’를 말하는 것.

가짜 오른쪽 할배들 죄다 끌어내리고나면, 이제 진짜 왼쪽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진짜 오른쪽으로 돌아서겠지.
그리고, ‘바꿀 필요 없는 것은 바꾸지 않아도 된다’ 를 말하는 날이 오겠지.
그게 ‘진짜 오른쪽’이잖아.

그럼 나는, 내 친구들은. 그 가운데에서 5도만 틀어진 방향으로 (95도) 서서,
이 ‘시국’을 다시 한번 이야기 하고 싶다.

4.

이번에 팀 프로젝트로 논문 작성을 하면서 쓴 주제가 ‘웹2.0의 시각에서 본 블로그의 미래’ 였는데,
거 참 때맞춰 이런 일이 잘도 터져준다.

블로그, 블로고스피어의 주된 힘은 뭐니뭐니 해도 Collective Intelligence-
바로 집단 지성.
소수 선각자들의 지혜보다, 다수 대중이 토론하고 반박하고 거짓 유포하고 진실 추적하고 치고 받으며 얻어낸 지혜가 더 우월하다는 얘기.

아고라든 블로고스피어든 돌아다니다보면 정말 같지도 않은 글들 천지에 되도 안되는 주장이 난무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갖고 살지?’ 싶은 글들도 정말 무진장 많다.
신문 기사 읽듯 하나 두개 읽으면 바보 되는 기분이지만,
굳이 깊이 생각하려 하지 말고 찬찬히 여러 글을 보다 보면 결국 내 눈에 들어오는 글만 들어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글들이 차곡차곡 모여 하나의 생각을 이뤄낸다.

적어도 ‘편향’의 문제는 없다는 거.
조중동에 경향/한겨레를 비교해가며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된다는 거.
조,중,동 나란히 펴놓고 골라 읽는 할배들이 이해 못하는 건 어찌보면 참 당연하다.

늙은이들의 고정된 생각은 결국 오래도록 고정된 시야에서 왔다.
땅쥐의 시신경이 퇴화하고, 인간의 꼬리뼈가 퇴화되듯 그렇게.
오래도록 차단된 시야 속에 살면 눈앞에 그것을 갖다대도 보지 못한다.

‘늙지 말자’
몸은 늙어가도 마음만은, 늙지 말자.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생각하자.

5.

웹2.0과 블로그에 관한 글을 쓰면서 관련 서적과 글들을 참 많이 읽어봤다.
(그 글은 조만간 최종 편집해서 올릴 예정)

웹2.0 이라는게 참 재밌다.
이거 누구 하나 ‘우리 이렇게 만들어보자’ 라고 해서 만든게 아니다.
그냥 하다보니 만들어진 스테이지를 마련한 스테이지 ㅋ



결론. 블로그의 미래와 우리 삶의 변화


 


웹2.0은 현상적 개념으로 최근 몇 년 간 변화한 경영, 경제, 사회, 공학의 모든 변화된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위에서 미처 언급하지 않은 공학적 진보의 산물인 RIA나 AJAX, 혹은 Open-API 등도 얼마든지 블로그와의 결합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왜냐하면 웹2.0은 어떤 대단히 특수한 사상적 모티브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0세기 인류가 정보화시대를 지나며 추구했던 이상적 가치를 차근차근 접목시키다보니 나온 일종의 신 조류(New Wave)가 바로 웹2.0이다.


 


하지만 일상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정보화 시대의 이상적 가치가 구현된다는 점은 우리가 블로그의 미래를 주목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모바일이나 포터블 기기들의 기술적인 진보가 거듭될수록 블로고스피어가 양적 팽창을 거듭할수록 블로그는 보다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하게 될 것이다. 또한 블로그에 녹아 있는 정보화 시대의 이상적 가치 역시 우리의 삶과 보다 밀접하게 맞닿아 결국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웹2.0의 시각에서 바라본 블로그의 미래는 정보화 시대의 이상적 가치가 우리 생활과 얼마나 밀접해지느냐에 관련된 아주 중요한 열쇠인 것이다.


내가 썼던 논문의 결론부.
여기서 중요한 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의 변화를 말한 부분인데.
정말 딱 그대로다.

이 ‘시국’에서 정부는 늘 ‘소통의 문제’를 말하지만, 이 세상이 어느새 ‘소통하는 방법’ 자체의 뉴웨이브를 지나고 있다는 거다.
대통령은 늘 소통의 문제를 말하면서, 협상은 그닥 나쁘지 않았는데 홍보를 조낸 못했네 스테이지로 몰고 가려하지만.
틀렸다.
소통의 방법부터 틀리니 제대로 된 대화가 될리 없는 거다.

쥐주둥이에 매일 달고다니는 ‘국민들의 우려’를, 조중동의 수사적 표현으로 이해해 쓰지 말고,
‘국민들의 우려’가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의 우려’를 소통하려 했다면.
저 따위 웃기지도 않는 대안을 대안이랍시고 내보이진 않았겠지 싶다.

계속 그렇게 귓구녕에 공구리 치고 ‘소통, 소통’ 말만 하지 말라고.

6.

조중동 압박 플레이, 는.
요즘 벌어지는 일들 중 가장 통쾌한 스테이지.

쥐박이 5년 대통령질 하는 거 볼래, 조중동을 이 땅에 남겨 둘래 하면.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

그런 측면에서 쥐박이가 참 고맙기도 해.

7.

주유할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란다.
내 상식선에 자리하던 기름값보다 거의 두배는 뛰었고, 더 웃긴건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싸다는거.
(다행히 나는 기름 덜먹는 ‘휘발유 마티즈’다. 다행이라고 웃어야 하나)

아버지가 제조업(알루미늄 도금공장), 그것도 조낸 조낸 작은 중소기업체의 사장님이시니
원자재값, 약값이 무지막지하게 뛰었다는 말은 전부터 들어왔다.
곡물값 오른다고 난리 친 스테이지 정말 얼마 안 됐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 경제가 살아나길 바라는 건 한마디로 웃기는 짬뽕에 안 웃기는 짜장면 스테이지.
선거홍보용 영상에서 쥐박이는 욕쟁이 설렁탕 아지메 손을 붙잡고,
경제 꼭 살리겠다고 큰 소리 치는데.

경제학의 기본서를 플렉스 레퍼런스보다 두려워하는 나도 안다.
개발도상국도 아닌 나라에서 설렁탕 아지메를 한방에 잘 살려줄 대안은 절대 없다는 거.

박통 시절로 회귀하고 싶은 할배들이 꽤 많다는 건 알지만, 그 시절 꿈으로 자라나는 애들 짓밟는 짓은 이제 좀 그만.

8.

이번 정부의 정책 기조는 딱 한마디로 줄이면,
‘노무현 반대로 고고씽’

잃어버린 10년 운운, 서민경제 바닥 운운, 아마추어 정부 운운, 썩은 공무원 집단 운운,
체신머리 없는 대통령 운운. 이 모든게 노무현 떄문 운운, 설거지론 운운

그런게 다들 막상 그 자리에 가니까 이건 아마추어만도 못하다.
(진중권 씨 글에서처럼, 참여정부가 아마추어 축구팀이면 얘네는 조기축구회)

결국 좁아진 시야로, 조중동이 말하는대로 앵무새처럼 조잘거리던 애들은 참여정부가 정말 쓰레기짓만 하고 다닌 줄 안 거다.
그래서 뛰어다니면서 온갖 거 다 뜯어고치고 난리 부르스를 한껏 추셨는데.
어라 이거 웬걸. 의외로 잘 해낸 게 꽤 있다.
그런데 이미 설거지 하겠다고 팔 걷어붙였고, 물은 틀었는데. 멍하니 서 있을 수 없겠지?

참여정부의 지난 5년을 나름 참 괜찮게 평가하는 1인으로서 부탁하건대,
제발 꼴값들 떨면서 30년씩 역사 잘라 먹지는 말라.

한겨레 사설이었던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가 꼭 참여정부의 반대항이 될 필요는 없다’ 라고.

9.

초등학교 교실이든, 술판이든, 시장통이든.
쌈질의 이유는 대개가 ‘자존심’ 문제다.

그 이외의 문제로는 (특히 돈 문제-) 살인, 방화, 사기, 협박 등등을 유발시키긴 하지만.
그냥 ‘쌈박질’의 경우 대부분 그 이유가 참 명료하다.
쟤가 날 무시했어, 내 인격을 깔아뭉갰어,
…내 자존심을 건드렸어.

애국심이란, 당신이 이 나라에 태어났기에 이 나라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고귀하고 우월하다고 믿는 당신의 신앙
- 버나드 쇼.

고귀하다고 우월하다고 믿는 이 조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건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만큼이나,
쌈박질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래서 싸우는 거다.

고귀하다고 우월하다고 믿는 이 조국의 자존심을 깔아뭉갠 정부와,
고귀하다고 우월하다고 믿는 이 조국의 국민이.

시위의 정당성이나 합법성, 이런 것에 우선해서 이 ‘싸움’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그런 감정이 없다.
이 나라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고귀하고 우월하다고 믿는 신앙 자체가 없다.

Cosmopolitan- 좋은데-
다른 나라 가서 해.

10.

강원도 횡성에서 불철주야 펜션사업에 매진하고 계신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통해 전언을 보내주셨다.

‘아들놈 괜히 인터넷 보고 바람 들어 시위 나갔다가 골빡 깨져오지 마라’

우리 아버지는 뭐 특별히 정당 지지 같은 건 없는데 요즘 투표하신 면면을 보면 대강 나와 정치성향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특히 쥐박이 대통령 된 거에는 대단히 불만이 많으시기도 했고.
아마 이번 쇠고기 문제도 쥐박이를 욕하는 쪽으로 생각을 갖고 계실 거다.
(정말 다행히도 우리 아버지는 신문을 별로 안 보신다)

아버지 걱정도 걱정이긴 한데, ‘시국’을 좀 찡하게 논하려면 좀 나가봐야겠다 싶긴 한데,
아직 서울은 너무 멀다.
인천에도 촛불 좀 들면 안되겠니? -.-

믿음이라는 이름의 환상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그래.

수없이 많은 것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데,
그 이룬 하나는 하나가 아니야.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조금 조금 모여 만들어진 것들이,
한방이면 아웃이야. 이런 어처구니 없는 손익배상이 어딨나 싶게도.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지. 그래서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을 멋대로 기대하고 꿈꾸고 희망하지만.
때론 느껴지는 것 역시 전부는 아니었단 사실을 깨닫지. 매번, 또 매번.

그렇게 수없이 깨닫고 깨닫는데,
그래도 그걸 또 반복해버려. 멍청하게.

세상엔 믿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들이 참 많고 그런 것에 회의를 품는 순간 인생이 피곤해지지만,
세상에 정말 믿어버리면 그만인 것이 단 한 개라도 있나? 정말로?

우린 서로 너무 신중하지만, 우린 서로 너무 몰라. 그래서 만들어 낸 ‘친절’이란 거,
때론 그것조차 대단히 불쾌해.

공과 사를 구별하고, 지인과 타인을 구분하고, 선 안 쪽과 바깥 쪽을 격리시키는 거,
이건 반오십년을 가까이 해왔는데도 참 어렵다. 앞으로 반오십년을 더해도 그렇겠지?

구별된 공과 사, 구분된 지인과 타인, 격리된 선 안 쪽과 바깥 쪽,
내가 안 쪽에 있을 땐 참 좋은데, 바깥에 있을 땐 기분 참 더럽지. 그렇다고 모두의 안쪽에 서겠다고 하면? 글쎄;

적당히 알고, 적당히 믿고, 적당히 ‘척’ 하고, 적당히 웃어주고,
그리고 돌아와 그런 나를 혐오하고.

하해와 같이 넓은 마음으로, 태산과 같이 높은 아우름으로,
그런 사람을 영웅시하는 이유는? 왜냐하면 걔네가 제일 만만하니까.

말 조심하자. 말이 말이라는 알을 낳으면, 그 알 속에서 무엇이 나와도 제 어미와 똑같을 수 없단다.
물론, 말 조심조차 필요 없을만큼 진실되게 살 자신이 없다면 그래.

믿다가 속고,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화나고, 그래서 버럭 화내는 일이 부단히 있지만,
다른 어떤 이유보다 그 따위 이유 때문에 포기한다는 건, ‘사람’으로서 살 자격이 없는 거지.

믿음이라는 이름은 정말 수없이 많은 경우에서 공상에 가까운 환상이지만,
아직 판단은 일러. 이제 23년 살았다, 나.

오랜만에 참 사색휴지통에 어울리는 글이네
휴지는 분리수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