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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적고 싶었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흐르고, 나 역시 그렇다.
언제나 나의 모든 아이디어는 기록에 천착하는 방향으로 흘렀는데,
정작 나는 나의 삶을 기록하는 데에 게으르다.
이건 반성이라기보단 회의.
나란 인간마저도 갖고 있지 않은 습관을 타인에게 쓰게 하는 것이 가능할까.
게다가 그게 내가 돈을 버는 수단이 될거라면.

아, 생각해보니 트위터는 적고 있다.
짤막짤막히 내 생각들을 적는다.
누군가 내 트윗의 멘션을 해주길 바라는 경우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어쨌거나 그 전부는 누군가가 보아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런 이율배반적 자기만족을 사람들은 이미 양껏 즐기고 있다.
현재의 문제점으로부터 시작한 4년전의 데이로그 아이디어는, 어쨌거나 중대한 고비를 맞은 것이다.

변명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어쨌거나 그건 내가 가진 역량이기도 하다.
대안 서비스로의 아이디어가 아닌,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력을 지닌 아이디어라고.
돈 한 두푼, 사람들 사람들의 소소한 카타르시스를 위함이 아닌 것,
이것은 능히 세상의 패러다임을 뒤집을 생각이다, 라고.
세상 모두를 그렇게 속일 수 있다.
다만 정작 내 스스로가 그것에 대해 일백프로 공감하지 못하겠다는거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좋게 말해 더 세련되어지고,
서비스가 어떻게 자생력을 갖추고,
돈이 어떻게 오가는지, 사람들이 어떤 생리에 의해 움직이는지 서서히 감을 잡고 있다.
그러면 그럴 수록 내가 가진 꿈, 그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자 대표이자 전부인 데이로그가 안타까이 비틀거리는 느낌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를 스스로에게 되묻는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자기부정이 됐다.
문제는 분명하다.
내가 행동하고 있지 않은 것.
모호함을 모호함으로 남겨두고 그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
나는 거대한 꿈을 꾸고 있어요, 이 꿈은 대략적으로는 이래요, 아직은 좀 모호하죠? 괜찮아요, 아직은 생각의 초입단계니까, 내가 가진 시간은 넘치도록 많으니까.
그렇게 나를 유능하고 꿈 있는 젊은이로 포장하고 그 포장으로 얻어왔던 넘치도록 뿌듯한 피드백을,
그렇게 나는 즐기고 있었던 거다.

그러나 아직도 데이로그를 버릴 생각은 없다.
나의 꿈은 일종의 좋은 영화 감독이 되는 것과 같다.
구체화 된 스토리가 망가지더라도 결국 나는 내가 바라는 씬들을 획득할 것이다.

– 갑작스런, 그러나 개연성 있는 타인의 관심
– 나 자신을 그럴듯하고 멋지게, 하지만 신뢰성 있게 표현할 수 있는 프로파일링
– 내 기록의 자기참조를 통해 다가온 또 다른 기록의 액션

나는 아직도 이런 씬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저 컷컷의 아름다움을 위해 나는 엄청나게 많은 산을 넘어야 한다.
아니, 산을 만들고 강을 만들어, 만든 산을 넘고, 만든 강을 건너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믿는다.
나는 어느 순간에도 나를 믿는다.
심지어는 나를 속이고 거짓말 하는 순간에도.

그렇기에 지금 내 생각은 나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다만 미래는 모르는 것, 나는 어떠한 내일들을 예비하게 될 것인가.
이 모두가 거짓이 아니었음을 담담히 토로하는 날이 올까,
이 한 때의 꿈을 애처로이 돌아보는 날이 올까,

모든 답은 너무 오래전부터 나와 있었다.
달리보면, 그게 답이다.
마음 먹은 순간 행동하자 라는 나의 의지가 언제나 게으름에 KO패 당하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이제는 패배에 대한 좌절도 죄책감도 사라졌다는 것.

세상 어디에도 나를 위해 예비된 계기는 없다.
부디 이 글이 그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it`s not over, till it`s over

0.

물리학실험2. 03년 2학기에 F. 교필이라 안 들을 수 없어 09학번과 같이 듣는 1학년 과목. 오늘은 절대 늦지도 빠지지도 않으려고 일찍 집을 나섰다. 나가려는데 지갑이 없다. 마지막 외출은 어젯밤 수영. 수영장에 두고 온건가. 생각해보니 수영 끝나고 오는 길, 너무 배가 고파 해장국 한 그릇 때렸으니 수영장은 아니다. 해장국집인가. 멀쩡히 계산은 했으니 거기도 아니다. 그럼, 차인가. 아무래도 차겠구나. 차에 도착해 뒤져보니 지갑이 없다. 제길, 집에 어디다 쳐박아 둔 걸 못 찾은 거다. 다시 올라온다. 또 찾는다. 또 없다. 젠장. 어제 커브하면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그게 그거였나. 다시 내려간다. 또 찾는다. 이번엔 차 바닥까지 뒤진다. 시트 제껴보니 내 차 정말 더럽다. 일단 수업이 바쁘니 이따 오는 길에 내부 청소나 해야지. 바닥까지 뒤져도 없다. 이거 뭔가 제대로 꼬인 기분이 든다. 또 올라온다. 또 찾는다. 또 없다. 이러는 동안 시간은 흘러 이미 수업은 지각이다. 지갑없이 학교 나갈 생각을 하니 어제 간당간당했던 휘발유 게이지가 떠오른다. 학교까진 죽어도 못 가는 양. 세상이 뭔가 불공평하게 도는 듯한 느낌, 어지럽다. 침대에 몸을 던졌다. 5분쯤 누워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한다. 답 없다. 벌떡 일어나 챙겨입었던 옷을 집어던지듯 벗어버리고 편한 옷으로 갈아 입었다. 욕 밖에 나올 게 없다. 다시 게임이나 해야지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헤드폰을 집어 드는데.

이런. 제길. 젠장. 망할.
거기 있었다. 안 보일 정도로 가려진 것도 아니고 그냥 코 앞에. 별 일 없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냥 거기에.

그토록 애타게 찾던 지갑을 손에 들고, 힘없이 웃었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바닥에 집어던졌다.
이 생퀴가 날 보고 비웃고 있었다.

이런. 제길. 젠장. 망할.


2.

최근의 나의 페이스를 요약하면, 한마디로, LOSER.
온통 지고 산다. 지난 두 학기 A0 도 억울해했던 나는 어디에도 없고, 그냥 한시간 한시간 수업은 그냥 겨우겨우 버티는거지. 시험 때 조차도 제대로 공부를 안한다. 기타에 미쳐있던 1학년 때도 이 정도로 공부를 안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아침형 인간의 계획은 애저녁에 물건너 갔다. 최근 몇 주간 단 10분 전이라도 학교에 일찍 도착해 본 기억이 없다. 그만큼 운전 실력은 늘었다-_- 니가 무슨 타임 리밋 영광의 레이서냐. 그나마 꾸준히 하던 영어 듣기도 한 일주일째 쉬었다. 다시 시작하려면 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사놓은 책들도 모조리 답보 상태. 배틀넷 저그전 승률은 조금 오르는가 싶더니 지독한 연패. 마이로그 프로토타입은 프로젝트 파일을 어디에 저장했는지도 가물가물 할 정도. 당차게 시작했던 SOPT 는 엠티 이후 세미나를 한번도 안 갔다.

처음엔 LOOSE 였는데, 이젠 LOSER 다. 도대체 도무지 빼도 박도 못할 만큼.
루즈- 일 때는 어떻게든 뭔가 새로운 걸 시작 해보려 애를 쓰고, 못 지킬 계획이라도 꾸준히 세워보고 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용기가 안 난다.


3.

꾸준한 타성의 힘은 남아있다. 바라는 건 아직 많으니까. 꿈, 열정이란 말을 듣고 가슴 설레지 않는 건 아니니까. 도럄직한 몸매에 눈 맑은 아가씨 보면 설레지 않는 건 아니니까. 담배 뻐끔거리며 키보드 두드릴 때 희열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실마리는 못 찾겠다.

인류는 개체의 영속성을 버리고 종족의 영속성을 선택했다. 날개가 부러진 새는 그냥 그 자리에 누워 죽었다. 다른 새는 날개가 있으니까. 그리고 날개 있는 새는 또 다른 날개 있는 새를 낳을테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야 한다. 이대로 누워 녹아버릴 수는 없다. 나는 개체의 영속성을 믿는 인간이니까. 다시 말해, 나는 나를 과할 정도로 사랑하니까.


4.

우선 내일 마지막 합주, 잘 끝내고 토요일 공연 역시 잘 끝내야지. 보러와 주겠다고 한 사람들 앞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은, 힘내야 할 일. 그리고 다음주부터 수업도 따라갈 만큼 따라 가야지. 내가 미칠 만큼 몰입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기말 닥쳐서 개고생 하기 전에 드는 보험, 들어두자. 상은이와 함께하는 마이로그 프로토타입 DB 설계도 꾸준히 해야 하고. 영어도 한 시간은 꼭 들어야지. 다음주부턴 합주도 없으니 수영 하루도 빠지지 말고 다니고. 음.. 그리고 또?

생각해보면 인생에 WINNER 가 어딨나. 다들 그렇게 자기 삶에 지독하게 지고 또 지며 사는 거지.
아직 2회말도 안 된 게임, 이 팔팔한 청춘에 여자친구 없다고 징징대며 엎드리는 건 내가 생각해도 욕 나올 만큼 추하다.

” It`s not over, till it`s over. “
- Yogi ‘Lawrence’ Berra

been thinking about you

낮에 잠들어 한밤중에 깨어나는 날, 그 날의 공기는 특별하다. 날마다 뜨고 지는 태양의 일정한, 아니 지구의 일정한 자전 주기에 맞춰 먹고 자고 떠들고 침묵하고 웃고 분노하는 일상에서 약간은 분리된 느낌. 피곤에 지쳐 잠들었으니 눈꺼풀 몇 번 더 꿈뻑이다 다시 잠들면 그만인 건데, 기어코 눈을 떠 모니터의 눈부심을 견뎌낸다. 밤에 찾아온 빛은, 수만 년 인류의 배고픔을 치유해 주었는지는 몰라도, 수억년 존재의 고독을 치유하진 못 할테니까. 나는 하릴없는 우주의 모래알이니까. 생각 할 줄 알고, 외로워 할 줄 아는 모래알. been thinking about you, and there`s no rest.

밤부터 시작한 텀프로젝트는 다음날 해가 뜨고 제출 마감시한 아침 10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고, 시체의 눈으로 아침 길을 달려 학교에 나갔다. 발표 시간에 늦은 이유로 4시간을 기다렸고, 28시간동안 잠 없이 눈 뜨고 준비한 발표는 2분도 채 안 되는 시간, 그 중 반은 왜 늦었냐는 질책을 들으며 발표를 끝냈다. 아침보다 좀 더 썩은 눈깔을 비벼 뜨고, 오후의 비오는 아스팔트를 달리며, 안 그래도 분노 할 일 천지인 이 땅에 이 정도로는 분노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굳게, 다짐했다. 단지 나는, been thinking about you, and there`s no rest

책상 위에는 한 장 한 장 꿈과 기대가 서려있던 프로그래밍 책들, 바싹 말라 버린 빈 물통들과 맥주병, 가득 찬 재떨이, 빈 담배곽, 정신없이 써 댄 코드 초안들이 널려 있다. 이들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는 많은 것을 듣고 있다. 모니터 너머 하늘엔 어느덧 비가 그쳐 별빛이 스믈댄다. 가로등 빛도 스믈댄다. 스믈대는 빛 위로 담배 연기가 부옇게 흩어지고, 흩어지는 연기가 말한다. 나는 소화하기 버거울 만큼 많은 이야기를 듣고, 이들의 이야기를 고민한다. 라디오헤드의 기타 소리도 톰의 목소리도 희미하다. 단지 been thinking about you, and there`s no rest. 내 목소리만은 너무 선명해, 누군가에게 전화라도 해야 할까. 새벽 두시 기타 소리보다 내게 위로가 될.

괜찮아, 응, 괜찮아.

어렸을 때부터 눈물이 참 많던 나는,
누군가 나를 달래 주던 기억이 별로 없다.
부모님도 친척들도 내가 울면, 그냥 혼자 그칠 때까지 그대로 두었던 것 같다.
누군가 달래주면 더 울어버리니까,

홀로 우는 나를 달래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나이를 먹고, 이젠 어지간한 일에는 울지도 못할 만큼.
키도, 덩치도 산만해졌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홀로 우는 나를 달래는 것은 여전히, 나라는 것.


지독한 감기에 누군가 내 몸을 짓밟고 나간 듯한 느낌.
조각 나고 헤쳐진 꿈 속에서 뒹굴다, 방 안으로 내리 쬐는 햇빛에 눈을 떴다.
눈을 뜨고도 한참을,
멍하니 심장 조여지는 생각들 속에 뒤척였는데.
어느 순간 뒤돌아 햇빛을 바라 보니.

눈물이 났다.
저 햇님이, 나를, 아무 말 없이,
달래주고 있었다.

괜찮아, 응,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아무도 없는 집, 아무도 없는 방에서
누가 볼까, 누가 들을까
숨 죽이며 울었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고 노트북을 열었는데,
빈 노트북의 까만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이 참 웃기고도 안쓰러웠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

나는 달래주면 안 되겠다,
부모님이 참으로 옳았구나,
생각했다.

하,
하.

사고, 인생의

새벽 비.
창가 너머로 들리는 부슬부슬 비님 소리.
셔플로 튀어나온 재주소년의 기타 소리와 참 잘 어울려.


아쉬움 가득한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가벼운 접촉 사고를 냈다.
신호 받고 서 있는 택시를 뒤에서 받았는데, 뒷목 잡고 내리는 기사를 보고 아 제길 피곤하겠구나 했는데,
음, 역시,
피곤했다.

보험처리 하고는 학교로 다시 돌아와 술을 붓고는,
사람 둘 들어가면 꽉 차는 영훈이 기숙방에서 풋잠을 자고 일어났다.
꿈 속에서 나는, 사고를 냈던 새벽 두시로 되돌아 갔는데,
같은 사람을 태우고, 같은 길을 달려, 같은 위치에서, 사고를 냈다.
역시 피곤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길, 다시 한번 더 사고를 냈다.
앞 차를 들이박는 순간, ‘아 이제 운전은 끝이구나’ 생각을 하며
꿈에서 깼다.
마신 술보다 더 끔찍한 삶의 피로가, 나를,
짓눌렀다.

일도 빼고, 수업도 빼고는.
지연이와 같이 점심 먹고, 동아리방에 들러 신입생 기타들 가르쳐주고,
조금 일찍 나와 내 차 정비를 맡기고,
집에 들어왔다.
한없이 공허한 마음에 침대 위에서 뒹굴다 잠이 들었다.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꼭 하고 싶었던 일,
그냥 병렬이 말대로 이번엔 때가 아니라 액땜 하느라 사고가 났다고,
그래, 그냥 그렇게 생각해야지.

내 인생 첫 사고에,
추억이,
방울방울.

올라가는 보험료 할증 만큼이나,

happy birthday, minsang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늘에 파 묻혀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유가 없다는 말이 진실은 아니겠지.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어두운 비가 내린다.
어둠에는 형체가 없고,
그저.

빛이 있어야만 한다.
빛이.

나를 달랠 수 있는 수만 가지 방법을 알고 있다 생각했다
몇 잔의 술,
몇 가치의 담배,
친구들과의 뻥,
계획 없는 게임 레이스,
합주와 상관 없는 기타질,
대량의 잠,
따위
 
모두 소용 없었다.
그저
빛이 있어야만 한다.

내 심장 활활 불타오를,
그런,
빛.

혼자는, 안 되지만.

‘혼자는 못 살 것 같다, 나 정말로.’
어제 은주, 지연과 술을 마시면서 은주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근 1년간 일본을 다녀 온 은주는 우리나라가 아닌 나라에서 지내다 보면, 그래서 조금 처절하다 싶을 만큼 혼자를 경험하게 되면 세상을 보는 시선과 나를 대하는 가치관이 많이 변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나를 돌아보았다. 내 외로움은 그저 ‘처절할 정도의 혼자를 경험한 적 없는 이의 배부른 소리’는 아닐까 하고.

어머니가 공사판에서 일하셨던 나 유치원 시절부터 사실 지금까지도. 텅 빈 집에 혼자 들어 오는 일은 익숙하다. 공유기, 냉장고 따위의 늘 켜 놓는 전자제품들의 LED 라이트가 속삭이듯 깜빡이고, 창문 너머로 꺼지지 않는 공단의 불빛만이 새어 들어오는 빈 집. 깜깜한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가 쇼파에 털썩- 하고 앉으면 참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럴 때마다 몸서리치게 나라는 존재를 자각한다. 혼자, 혼자라고. 부모님, 친구, 친척, 지인, 애인이 있더라도 아마 영원히 나를 둘러 싼 이 외로움들을 벗기지 못 할 것이라고.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혼자는 못 살 것 같다, 나 정말로.’

정서적 자립. 홀로 서기. 그런데 그거, 나 아직 잘 모르겠다.
외롭다고 느끼지 않으면 홀로 선 것일까. 혼자도 상관 없다- 라고 느끼면 홀로 선 것일까. 인간 관계 모두가 부질 없다 느끼면 홀로 선 것일까.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지속 될 수 있어야 정말 나 홀로 섰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 갖지 않고, 그냥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사람들 귀찮으면 또 그냥 그런 대로.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조금의 차가운 표정 하나, 지워진 댓글 하나, 대답 없는 네이트온 대화 한 줄, 이런 것들 하나 하나에 이렇게 덜컥 내려 앉아 걱정 하는 것 보면 나, 이미, 그렇게 살긴 틀려 버린 인생인지도.


ps : 나 술 다 깼음;

030_아침해바다풍경.jpg

싸이월드 페이퍼, From The New World

12월 8일부로 싸이월드에서 페이퍼 서비스 중지- 이거 안지는 좀 됐는데,
제대와 함께 미니홈피를 방치해놔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페이퍼 써놓은 게 있었단 말이지;

아래는, 페이퍼 작가 프로필 ㅋ
군대 가기 전, 뭐 나름은 상큼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bNihilist 김민상
귀차니즘을개멋니힐리즘으로포장한현실적이상주의자미성숙체-



플라곤 주기수도 끝나고, 그저 멍하니 군 입대만 기다리던 시절의-
풋기 어린 그러나 가슴 아리도록 그리운, 기록들.

remind, ever-





[#M_[01호] " From The New World "|[01호] " From The New World "|[01호] ” From The New World “
2004.12.2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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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처럼 행복을 시작 했을 때,
각자의 시간에는 각자의 시공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다.

α 는 α 이고, β 는 β 다.
의미는 다분히 자의적인 단어다.
그러나 알파를 긍정하고 베타를 긍정하는 일은 자의적인 일이 될 수 없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는 일은 무언가를 긍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간 나에게 찾아왔던 모든 시작의 핀트에 서서.
나는 올 곧게 오로지 나만을 긍정해왔다.
그리고 아파했고, 그리고 외로웠다.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것.
그런 유치하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감정.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뒤에 다시 갖을 기대의 감정.

내게 있을,
수많은 순간의 첫째와 마지막.
turning point-


From The New World_M#]

[#M_[02호] 난 아직 너무 어려|[02호] 난 아직 너무 어려|[02호] 난 아직 너무 어려

2004.12.27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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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사진.
이유는?
나 같지 않게 나와서-.-.-



사진의 제목은 ‘댄디한장발기타리스트컨셉’
결과는?
장발기타리스트는 절대 댄디해질 수 없다.



사진첩 민상 폴더에서 불과 몇페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도,



저런 사진들이 즐비-.- 하게 널려있다.
오랜만에 둘러 본 느낌은?
글쎄, 그 당시 나를 보았을 모든 사람들의 느낌과 같지 않을까.
 



지금을 긍정하는 태도는 곧, 어제를 부정하는 태도.
부정된 자신을 본 기분은 어때?
어딘가 착잡한 건 사실야.



어렸을 적 꿈꾸던 이상태가 현실의 수많은 부조화와 충돌하여 낳은.
부재, 부조리, 불안정, 불가능성에 대한 역추.
그런 감회에 대한 호오를 논하기에,
내 나이는 너무 어려.



그래,
난 아직 너무 어려.

_M#]

[#M_[03호] 어디까지일까, 나의-|[03호] 어디까지일까, 나의-|[03호] 어디까지일까, 나의-
2004.12.30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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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행복한 시간들에 우울해 한다.
기시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오래전도 아냐. 불과 2년 전에도 한번 있었던 일인걸.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 받는다는 사실로만 행복해 할 수는 없을까?



유치하다는 것 나도 잘 알아.



아무리 잘난척 해봐야, 아무리 다 영근척 해봐야.
민상 넌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유치한 감정 속에 살아간다는걸 알아.



어디까지가 나의 행복일까. 응?
이 세상의 불행 어디까지가 나의 행복일까.
이런 슬픈, 유치한, 감정적인. 씨발.
모르겠다.





다만,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다만, 행복할 수는 없어.




그저.



다만, 살아갈 뿐.

_M#]

[#M_[04호] 아침해|[04호] 아침해|[04호] 아침해
2005.01.06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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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olta Dimage XG, 2005년 1월 1일, 전남 여수

 

모니터 불빛이 깜빡일 때야 나는 생각한다.
깊게 들이마신 담배연기가 가슴을 때리고 기어코 그 불빛이 사그러 들 때야 나는 생각한다.

바다 위로 떠올라 구름 모양대로 아름다이 몽우리진 붉은색의 일출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그 안에 나는 없지만.
나는 그들 속에 이미 있다.


가는 비 속에 사람들은 저으기 바지섶만을 적신다.
그러나 이미 죽은 사람들의 음성은 내 귓가에 맴돌고.
어찌하랴.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니.
그리고 그 누구도 죽음에 쉽사리 자수하지 않을테니.
기형도 시인의 바지 섶을 적시지 않았던.
그 비처럼.

그러나 고민들을 뒤로한 채, 언제나 나의 일상은.
소소한 빗방울들로 괴로워하고,
미미한 눈물 방울들로 슬퍼한다.
작은 일들은 이미 없다.
그러나 나의 슬픔만은 오롯이 있다.


idealpolis cy-paper 3호가 발간 되던 즈음,
몇가지 일들로 상당히 우울해 있었다.



그리고 그 몇가지 일들에 어울리는 몇가지의 우울한 음악을 들으며.
또, 나를 만들어 온 나의 시인들의 시들을 읽으며 그들을 달래고, 또 나를 달랬다.

달랜다는 것은 언제나 소망을 향한 낙서.
그러나 이번만은 적잖이 나의 우울도 예쁘게 사라졌다.
그리고 그 낙서들 속에, 앞서가지도 뒤서가지도 않는다는 다짐을 한다.




아침해가 떠오른 풍경을 사랑하 듯,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사랑하리라.
아침해가 떠오른 풍경을 가슴에 담 듯,
‘모든 사람들의 행복’이란, 해맑은 소망을 품어야지.

그제서야 2005년의 하늘이 서서히 밝아온다.

_M#]

[#M_[05호] 빈 바람|[05호] 빈 바람|[05호] 빈 바람
2005.01.09 02:06
 
사용자 삽입 이미지

Sanyo MZ3
1/4 sec, ISO 200



빈 바람
 - 민상


1.

공원 가로등이 깜빡일 때,
내 가슴, 시리도록 불어오던 그 해의 겨울.
바람이 머릿결을 흩날렸다.

지나친 피로에 눈물 한 방울 흘리게 해주었던,
지나친 시련에 두 주먹 꽉 쥐게 해주었던,
그 해의 겨울바람.
바람소리보다 옅은 멜로디로도 가슴 따스해질 수 있었던,
그 때.

소년이 바라보던 하늘에.
어느덧 빈 바람이 지나간다.
침묵으로 말하는 바람소리는-
이제 빈 깡통마냥 얇은 파열음을 비명 지르고.
없다.
아무도, 아무 것도.


2.

빈 바람이 스쳐가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음에.
때론 후회가 되어, 때론 그리움이 되어,
나뭇잎처럼 부서지어 흘러 간다.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애처롭게 떨던 그처럼.
나는 처음 겪는 추위에 몸서리쳤다.
뒤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던 소년은,
지금 어디 있는가.
지금 그 어디에서 두 손 호호 불며 하늘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조용히 두 손을 모아, 빈 바람을 살포시 담아본다.
소년이 꿈꾸었던-
겨울 바람을 맞으며 두 주먹 꼭 쥐고 그리었던-
그 하늘을 기다리며.


3.

쓸쓸한 공원 가로등 사이로 연인들이 지나간다.
그들의 미소는 꾸밈이 없고.
그들의 두 손엔 온기가 가득하다.


4338년 1월 9일 초고 ”
 - 사람의 감정은 측정 불가. 그러나, 그리움을 측정할 수 있다면. 외로움을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움을 지우려고 애 쓰는 동안. 내내 나의 하늘엔 빈 바람만 불어온다. 적어도 그 때는, 무엇인가를 바라는 일이 자연스러웠음을 생각하면- 그 때가 그립기도 해. 지독한 슬픔과 우울 속에 허우적거렸던 그 때를- 이젠 한편의 아름다운 풍경화처럼-_M#]

[#M_[06호] 내게 기타를-|[06호] 내게 기타를-|[06호] 내게 기타를-
2005.02.24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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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합주.

밝아오는 하늘, 우산이 있더라도 피하지 않았을 새벽비.

버스 첫차를 타고, 그들과 함께,

집으로.


눈물 흐를듯한 피곤.

불안, 두려움, 가슴 속의 응어리.


누군가 서 있었다면,

거기 그 자리에서,

너를 꼬옥 안아주었을텐데.



아무도, 아무도.


항상 그렇듯 내 시선의 끝엔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미소짓고 있는

내 사랑,

나의 그리움.


그렇게 쓰여지던

비오던 날의 일기.

내 고독,

나의 외로움.


 - 주기수 봄공연을 앞둔, 2004년 5월의 어느 날


——————————————————————————–



저 사진은 아마 작년, 그러니까 주기수 봄공연 때였을 거야.
공연을 몇 일 앞두지 않은, 그러니까 불안감이 극에 달해 있을 때지.
내 기억에, 연습 상태는 정말 뷁이었어.
초조함에 밤새 합주를 하고.
그래도 내일을 위해 기타를 둘러맨 채 집으로 향했어.
그 새벽에 비가 쏟아지더라.
내 기타에게 우산을 씌워줬던가?
아니, 저렇게 비를 맞은 걸로 봐선 그냥 우산 들고 간 거 같아.
아니, 우산도 없었나?

다시 머리 기르고,
다시 공연 하고 싶은 생각.
후배들 오티 공연 하는거 보니 다시 하고픈, 그런 생각 들더라.

저 때의 눈물 흐를 듯한 피곤, 불안, 두려움, 가슴 속의 응어리.
그런 느낌이 그리워.

군대 가기 싫다.
그 때의 그런 느낌.
그런 희열은 앞으로 찾아오지 않겠지.

내게 기타를 쥐어줘.
관객이 어떤 이든 상관 없어.
단 한 명이든, 수천 명이든 상관 없어.
모두 다 내 기타로 내 목소리로 죽여버릴 자신 있단 말야.


최소로 잡아도 3년.
한참을 달려오다보니 그런 긴 시간이 나의 꿈 앞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어.
내 인생에 대한-
눈물 흐를 듯한 피곤, 불안, 두려움, 가슴 속의 응어리.
그런 내게 기타가 없어.
기타가 없어.

내게 기타를 쥐어줘.
기타를._M#]

꼭 글을 저렇게 써야만 했을까, 싶게.
홀로 겪는 외로움이 몸서리치도록 전해온다.
왜 지금의 나는 저 때처럼-
꿉꿉한 가슴 소리를 속 편히 표현하지 못할까.

시집을 자랑삼아 끼고 다니던 문학소년은 죽었다.
그래도 그 시절 그 때를 기억하고 아끼는 나는 꿋꿋이 살아 남아,
그 시절 그 떄를 기억하려 함,
오래도록.

어쨌거나 난 당신 야구가 싫어

http://cynews.cyworld.com/Service/Sports/ShellView.asp?ArticleID=2008102515402989172&LinkID=249

오늘도 싸이 뉴스에서 긁어옴.
아, 네이트온 접속하면 뜨니까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네;
역시 ‘Gateway’ 라는 건 참 중요한 위치란 말이지.

어쨌거나.
기사보고 또 다시 화가 났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좀 짧게 쓸란다.


야구를 하다 보면 진짜 별 일이 다 일어난다.
하다 못해 테니스공으로 하는 동네 야구만 해도 별별 웃기지도 않은, (그러나 지나고나면 되게 웃긴) 일들이 수두룩히 일어나는데 프로야구는 오죽 하겠나. 만약 타자가 친 공이 홈런성으로 날아가다가 그냥 한가로이 날고 있는 새에 맞아 떨어진 경우- 그건 안타일까 홈런일까? 그래서 프로야구 룰북에 보면 별별 이상한 상황까지 다 고려되어, (고려된 것도 있고 ‘한번 겪어본’ 것도 있고) 들어간 재밌는 내용들이 많다.

야구에서 이런 재밌는 상황, 기상천외한 시추에이션이 벌어질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 배트도 둥글고 공도 둥글다 ]
맞다. 배트도 둥글고 공도 둥글다. 그래서 내가 던진 공이 어디로 갈지, 내가 친 공이 어디로 갈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 불확정성의 원리를 고려한다면, 아마 신도 모르려나; 아무튼.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의 몸에 맞는 경우 이를 ‘데드볼, 보다 정확히는 Hit By Pitched Ball’ 이라고 표현하고, 볼넷과 똑같은 한 루의 진루 기회를 준다. 이대로만 보면 문제 될 게 하등 없다. 타자를 진루 시키는 거 좋아할 투수 당연히 없으니 몸 쪽으로 던질 때는 신중을 기할 것이고, 타자는 좀 아프고 기분은 좀 나쁘겠지만 두 눈 부릅뜨고 볼을 네 개나 골라내야 얻어 낼 상황을 얻었으니 이 얼마나 공정한가.

그렇다. 이건 단지 ‘기분’ 문제다.
맞는 놈 기분이 나쁘면 안 된다는 거다. 스포츠 정신이고 지랄이고 다 필요 없고, 선수가 경기가 아닌 다른 이유로 고통을 느낀다는 거 자체가 기분 무지 나쁜 일 아닌가. 그 선수 뿐만 아니라 그 팀을 좋아하는 팬 역시 말이다.

참, 사람 일이란 게 그렇다. 아무개 형한테 나이 어린 동생이 아무개 형이라고 부르는 거 너무 당연하고, 그 동생이 형한테 ‘아무개야’ 라고 말하는 거 분명 문제 있다. 그런데 미국 사람이 보면 뭐가 이상한지를 모를 것이다. 그건 그냥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일종의 룰이니까. 그래서 야구하는 사람들끼리 데드볼 상황에 모자를 벗든 바지를 벗든 내 알 바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맞은 놈이 기분만 안 나쁘면 된다. 그게 전부다.

그런데 분명 야구에는 빈볼시비라는게 존재한다. 변화구도 아닌 직구를 그냥 몸도 아닌 머리 같은 중요 부위 (맞으면 원 큐에 주님 품으로 고고씽 할 수 있는) 에 맞으면 열에 아홉은 선수들이 우르르 뛰쳐 나간다. 그걸 방지 하기 위해 저들끼리 룰을 정한 거다.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투수한테 타자도 사람인데 뛰쳐 나갈까- 뭐 이런 생각, 인건데. 뭐, 그래도 열에 아홉은 나간다. 열에 아홉 중- 또 여덟은 투수가 미안한 표정을 짓지 않거든? ㅋ

어쨌거나 이것도 명문화 된 게 아니고, 어떻게 보면 개인의 선택이니 김성근 감독 생각이 완전 틀렸다는 건 아니다. 감독 입장에서, 투수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벌어진 일 때문에 마음 쓰고 경기 그르치는 거 보기는 싫겠지 물론. 그런데 내가 화가 났던 건 말야.

당신은 감독이잖아. 그 정도 위치면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냐?
경기 중에 벌어진 일은 사과 할 필요 없다, 라고?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자.
경기 중에 상대편 타자가 친 파울볼이 덕아웃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 당신 눈알에 정통으로 맞았다면 어떨까.
그래서 당신 눈이 Sphere 가 아닌 Plane 이 되었다면- (아 이 표현 내가 썼지만 좀 리얼하게 상상되는데? ㅋ)
그런데 그 파울볼 친 타자가 씩- 웃으며, ‘아 신기하네, 공이 어떻게 정확히 눈알에 맞냐? ㅋㅋ’ 이러면 어떨까.

그런 상황에도.
그런 상황에도 당신이 그 타자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기분 1g 도 안 나쁘고) 여길 수 있을까?
만약 당신 눈이 피반죽이 되어도 저 상황을 이해 할 수 있다면,

선배 몸 맞추고 사과 한번 했다고,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도 하지만)
9실점한 투수를 공 120개 던질 때까지 안 내린 거,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2군 강등시킨거,
당신의 저 동네 야구보다 못한 저질 마인드,
나 역시 이해한다. 모두.


postscript : 나는 어렸을 때부터 LG 팬. 지금 봐도 감동적인 94년 우승 이후, 암흑기를 지나던 LG 를 준우승까지 올린 감독이 또 김 감독.  사실 난 그 때도 김 감독을 싫어했었다. 우리 아버지는 더 싫어했다. 당신은 어쨌거나 LG 스타일이 아니거든 -.-

postscript2 : 쓰고보니 별로 안 짧네 -_-

성장과 분배, 그리고 교육.

http://cynews.cyworld.com/Service/news/ShellView.asp?LinkID=578&ArticleID=2008101511464766108#comment_list
오마이뉴스 기사인데, 왜 오마이뉴스에선 원본 검색이 안되는거지;

어쨌든, 오랜만에 참 마음에 드는 기사를 발견했다. 언론매체의 기사라는 것도 다 사람 해놓은 짓인지라, 이래 저래 성향이 보이고 가치관의 분절이 보인다. 조중동도 지들 딴엔 가치중립적이라고 쓸지도 모른다, 이거지. (아니면 지들이 무조건 맞다- 라고 생각하는걸까) 그래서 나는 기사를 읽을 때에도 웬만하면 크게 동감하지도 않고 크게 반대하지도 않는 편이다.

시장주의 논리도 신자유주의도, 성장과 분배의 딜레마도, 심지어는 애국심까지도 어떻게 보면 개인의 선택이다. 그 선택이 가져오는 책임과 권리에 대해 이율배반적인 모습만 보이지 않는다면야 (또 그게 나한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야) 하등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내가 안 보면 그만인 것이니 그네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봐야 내 알 바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댓글이 달릴 것 같은 기사는 아예 댓글 자체를 안 봐 버리기도 하고.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저 정치인 잘 뽑는 수 밖에. (그러니까 당신들도 투표를 좀 하란 말이다, 쫌!)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가 있어야 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 이 기사의 내용 역시 그렇다. 바로, 교육이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교육의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일반 원리.
이거에까지 반대라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으니 논외로 치고.

이런 방법이 있고, 저런 방법이 있다. 이 방법에도 장단이 있고 저 방법에도 장단이 있다. 그런 경우 둘의 장단점을 잘 재서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 이것 역시 일반 원리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일반 원리의 전제조건은 그 선택 중의 하나가 다른 일반 원리에 반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누구나 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거다.

좀 전에 ‘성장과 분배의 딜레마’ 이야기를 했다. 너무도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고 또한 내가 그들과 그 지식에 관하여 논할 만큼 깊게 아는 처지가 아니니 짧게 말하겠다. 한 나라의 경제를 파이(Pie) 라고 보자. 성장주의자들은 일단 그 파이를 크게 키운 다음 나눠 먹자고 주장한다. 쥐꼬리만한 파이를 수십 수백 등분해봐야 한 사람당 먹는 조각은 쥐털조각만큼도 안 나온다. 그러니 그 파이가 커질 때까지 일부만 배불리 먹도록 나눠가지고 나머지는 그 파이의 냄새만 맡게 하는 것이다. 그 냄새로 인해 나머지는 파이를 만드는 일에 보다 열중하게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분배주의자들은 일단 나눠먹고 시작하자고 한다. 뭐든 먹어야 군불을 때고 반죽을 하고 사과를 따오든 할 것 아닌가. 그래야 파이를 만들든 쿠키를 만들든 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둘 다 맞는 이야기 같다. 그레서 딜레마라는 이름이 붙어 쓰이는 모양이다. 잘은 모르지만 이건 근 이백년은 넘은 것이니 현대 경제에서 그 둘을 똑 부러지게 이분할 수는 없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성장을 위해서는 분배가 필요하고, 분배를 위해서는 성장이 필요하다, 정도. 단지 어떤 것을 더 중요시 하느냐 라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

이 ‘성장과 분배의 딜레마’를 교육에 적용해 보자.
성장 축에서는, 일단 전체적인 수준의 향상을 위해서는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말 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이라는 이름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우등생들이 올바로 평가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청을 키울 것이다. 평준화 시스템은 하향 평준화를 불러올 뿐! 이라고 말 할 즈음엔 목에 핏대를 세우겠지. 분배 축에서는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어야 한다고 말 할 것이다. 세계 1등 한 사람보다는 세계 하위권의 다수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 할 것이다. 모두가 골고루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보장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어느 쪽이 ‘누구에게나 평등한 교육의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라는 일반 원리에 부합하는 생각인가?


교육은 경제와는 다르다. 기다리고 뭐 할 시간이 없다. 교육이라는 흐름에서 완전히 낙오된 인생은 결국 국가의 미래를 좀 먹는다. 적어도 파이 조각을 얻지 못한 이들, 그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 다시 말해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의 미래를 좀 먹지는 않는다.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잖은가. 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인간들 모두 (대부분이 아닌 모두!) 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인간들이다. 이 사회의 어떤 다른 이슈가 이런 확정적인 구분을 가능케 하는가? 이 사회에 문제가 되는 인간들 모두가 가난한가? (경제) 전부 남자인가? (양성평등) 전부 빨갱인가? (이념) 전부 인천 출신인가? (지역)

대학의 우수 학생 선발 편의를 위해 폐지된 수능 등급제?
대학의 학생 선발조차도 그 대학의 위상이자 능력임을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정말 몰라서 하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건지.

글로벌 한국을 위한 영어 몰입 교육?
영어 잘 쓰는게 먼저인가, 우리 말 제대로 쓰는게 먼저인가. 그게 사교육을 부추기겠는가, 감소시키겠는가.


초등학교 일제고사의 성적을 전국 단위로 공개하자는 아줌마들이 있다.
아마 그 아줌마들 대부분 자기 자식들이 지금 그럭저럭 잘 하고 있는가 본데, 한가지만 말하자.

탐욕이 불러올 재앙이 당신들 눈 앞에 있을지 모른다.
수능만 다가오면 자살하는 고3들. 다 초등학교 중학교때 1등만 하던 애들이다.